칼럼

큰 지도자를 배출하는 건 언제나 시대정신인데…

사람들은 왜 안철수에 열광하는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의 실체는 신기루를 넘어 구체적 숫자와 물증으로 우리 곁에 있다. 8월 20일 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원장이 48.4%, 박근혜 후보가 48.1%로 안 원장이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박 후보의 경우 7월부터 실시한 4차례의 여론조사에서 약간의 하락세를 보인 반면, 안 원장의 경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왔다는 사실이다. 역시 20일 발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박근혜-안철수가 양자대결을 할 경우 안 원장이 48.8%, 박 후보가 44.5%로 안 원장이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율이 4개월 후 투표율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일단 숫자는 과학이다.  

사람들이 안철수 원장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증거는 서점에 있다. 최근 그가 펴낸 <안철수의 생각>은 상품 등록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 역대 최단 시간,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대형 서점은 이런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안철수 코너를 마련해 놓고 다양한 서적을 함게 진열해놓았다. <안철수 경영의 원칙>, <안철수의 28원칙>, , 처럼 안철수가 직접 지은 책도 있다. 이 외에도 안철수 현상을 소재로 하여 다른 사람이 집필한 책들도 수두룩하다.

<안철수 현상과 제 3 정당론>, <안철수의 힘>, <안철수 모아서 잠금해제>, <안철수냐 문재인이냐>, <안철수 검증보고서>, <안철수는 바람개비>,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멘토의 시대>, <대통령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같은 책들도 있다. 안철수는 책뿐만 아니라 시골의사로 알려진 인물인 박경철과 토크 콘서트에서 말의 향연을 풀어 놓아 청춘을 위로하곤 했다. 말과 글은 정신의 양식이다. 안철수는 상징과 기호를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은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야권 성향의 안철수의 부상에 대해 여권 정치인들은 마뜩찮게 여길 것이다. 그렇다고 야권 인사들이 마냥 안철수를 환영하는 것도 아니다. 안철수를 다른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에 빗댄 어떤 비유처럼 일부 야권 인사들은 둥지를 빼앗길까 불안할 것이다. 시원하게 출마선언을 하지 않는 그를 향해 ‘간만 본다’며 비난하는 측도 있고, 정치경험이 전무한 그를 불안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안풍(安風)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심지어 CEO의 한계를 지적하며 ‘재탕 문국현’ 혹은 ‘착한 이명박’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폄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풍(安風)’의 존재와 강도를 부인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안풍’의 근원에는 기존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안철수 현상’을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으로 해석한다. 유시민은 현재의 ‘안풍’이 2002년 ‘노풍’과 같아 사실상 ‘두 번째 노풍’이라고 진단하고, 여의도 정치의 여집합, 즉 기성 정치에 없는 모든 것의 총합이 안철수로 표출되었다고 보고 있다. 진중권은 ‘다른 주자들에게 없는 리더십과 팔로우십에 대한 철학이 안철수에게는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혹자는 그를 네트워크의 상징, 인터넷과 IT로 상징되는 미래의 상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가 가진 모든 것과 여의도 정치의 모든 것이 대척점에 위치한다. 그에 비추어 빛바랜 대의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된 국회에서 벌어지는 곱지 못한 일들, 그리고 시민의 열망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정치 언저리의 소모적인 일상에 노출되어온 국민들에게는 안철수라는 대안이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를 여는 열쇠이자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는 돌파구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철수를 ‘비(非) 정치’ 내지는 ‘탈(脫) 정치’의 상징으로 보는 건 섣부르다. 안철수는 사적 영역의 인물이면서 어느 공적인 인물보다도 공공성을 앞세워 자신의 공적 자산을 쌓아왔으며, 어느 정치인 못지않게 미래를 이야기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점에 대해 의사답게 진단하고 기업가답게 혁신을 주장하며 대중과 공감의 폭을 꾸준히 넓혀왔으며, ‘무릎팍 도사’나 ‘힐링 캠프’같은 예능 프로에 출연해 자신의 선한 의지를 설파해 왔다. 이런 그의 행보는 누구보다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련되고, 정치적인 그의 말과 행보에 주목하라

지난 몇 개월간 그가 각종 공식 석상에서 한 말을 필자가 분석해 본 결과 그는 대중과의 접점을 최대화하며 자신의 존재와 시대정신을 함께 이야기하는 세련된 정치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권력의지를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이 주도하는 문화적인 힘을 과시했고, 막연한 미래에 호소하기보다 현재의 가치를 강조하며 공감을 자아냈다. 일단 대중의 신뢰와 공감을 얻은 사람은 언제든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스스로 공격받지 않는 ‘멘토’의 화법을 구사한다.

즉, 정치적인 공격으로 입을 손해를 최소화했으나, 단순한 ‘멘토’에 머무르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영향을 준 인물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도 읽을 수 있듯, 그의 꿈은 권력의지형이고, 그의 행보는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2012년 대선은 따라서 어느 정치학자의 표현대로 우리 정치사의 최대의 실험이 될 것이다. 안철수가 승리한다면 기성의 정치 인프라를 무시하거나 건너뛰고도 정치적 입지를 점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치과정은 대대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노사모’의 활동에 힘입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외국의 언론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웨보크라시(Web + Democracy)'라는 신조어로 설명했듯, 또 다른 정치 신조어가 생겨날지 모른다. 심지어 대중정치가 새롭게 정의되고, 정치 지망생들을 위한 새로운 교과서가 나와야 할지 모른다. 설령 안철수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의 등장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현재까지의 지지율 1위에서 나타난 그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기성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의 표출이고, ‘새로운 정치’에의 열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