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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마주친 운명의 나무 묘비(墓碑) 하나
한명희   |  2012-06-25 11:21:12  |  조회 3945 인쇄하기
반세기 전 마주친 운명의 나무 묘비(墓碑) 하나 

 

- 가곡 '비목'을 노랫말을 만든 나는 왜 지금도 예술제를 올리나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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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급 장교 한명희가 동부전선 최전방인 강원도 홍천 백암산의 초소(GP)에 부임한 건 1964년이었다. 휴전 11년 째,  ROTC 육군 소위의 눈에는 전쟁의 상처가 여전했다. 곳곳에 M1 소총 실탄이 수북한가 하면, 야전삽 끝에 유골이 걸려 나왔다. 지금과 또 달리 철조망 하나를 사이로 인민군과 대치하던 무렵, 비무장지대 자연은 속절없이 경이로웠다. 새벽녘 운해(雲海)에서 달밤 궁노루의 울음소리까지…. 특히 양지 바른 산허리에서 발견했던 무명용사의 허름한 나무 묘비(墓碑) 하나가 전역 이후까지 눈에 밟혔다. 그걸 노랫말로 만든 게 1967년 국민가곡 '비목(碑木, 장일남 작곡)'의 탄생이다. 노랫말에는 전쟁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무얼 기억해야 할까가 담겨있다. 방송국 PD, 국립국악원장 등을 역임한 그는 그 인연으로 비목문화제를 강원도 현지에서 10년 이상 개최했는데, 올해부터 이름을 나라사랑 물망초예술제로 바꾸고 강원도 양구의 최전방 고지 OP에서 첫 행사를 가졌다. 예술원 회원인 그가 한국사회 어제 오늘 회고와 함께, 최근의 심경을 피력한 에세이를 이슈레터에 보내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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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세기 1996년 6월 6일 현충일이었다.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북한강 계곡 둔치에서 휴전 이후 첫 진혼 예술행사인 제1회 비목(碑木)문화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3시, 따가운 햇살의 나른한 더위 속에서 막 행사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육중하게 적료하기만 하던 계곡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휘몰아 쳤다. 무대 위에 설치해 놓은 북들이 넘어지고 스피커에서는 사회를 보는 황인용 아나운서의 멘트보다는 마이크를 스쳐가는 금속성 바람소리가 더 요란하게 귀청을 흔들었다. 정말 뜻밖이었다.
  그렇게 대략 20여분쯤 지나서였다. 놀랍게도 그 파죽지세의 거센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종적을 감추었고, 진혼제는 분향과 전쟁시 낭송과 살풀이춤과 퍼포먼스 등으로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훗날 스탭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날 10여 대의 버스에 동승했던 손님 중의 한 분이던 어느 스님은 자신이 감지한 그때의 상황을 진지하게 전해주더라고 했다. 바람이 일기 시작할 때 서늘한 냉기가 먼저 밀려왔다는 것이고, 자신은 그것이 전쟁 당시 산화했던 영령들의 혼령임을 직감했다고 하더라는 내용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세월은 16년이 더 흘러서 필자의 나이도 70대 중반에 이르렀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어떤 필연적인 곡절 때문인지 요즘 필자의 뇌리에는 불현듯 그날 현충일 행사 때의 회오리바람 이변이 무슨 암시처럼 떠오르고 있다. 더욱 희한한 일은 그동안 새까맣게 잊고 있던 한 반세기쯤 전의 잔상까지 무슨 인연의 고리처럼 이어지며 새삼스레 회상된다. 고등학교 때인지 대학교 시절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느 잡지에서 당시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계시던 백성욱 박사의 글을 읽고 적이 당혹해 했던 기억이다. 요지는 이랬다. 6·25 전쟁 때 강원도 화천 부근 전투에서 산화한 꽃다운 나이의 고혼(孤魂)들이 자주 나타나서 자신들의 안식을 빌어달라고 했고, 그래서 그 분은 화천에 가서 정성껏 천도재(薦度齋,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한 의식)를 지내주곤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성과 과학의 서구문명을 금과옥조로 맹신하던 당시의 젊은 내게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얘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성의 본산인 대학의 총장이라는 분이 그 같은 미신 같은 일들을 믿고 있으며, 굳이 글로 남기다니!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하니 결과적으로 나도 우연의 일치처럼 화천 지역에서 비목문화제를 올려왔다. 십여 년 동안 매년 현충일에 예의 천도재를 똑같이 지내온 셈이니, 참으로 인드라망처럼 얽힌 삼라만상 인연의 고리란 창해일속만도 못한 알량한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길이 없지 싶다.
  바로 지난 현충일이었다. 38선 이북인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속칭 펀치 볼(punch bowl) 을지전망대에서는 제1회 물망초 예술제가 열렸다. 필자가 기획하고 ‘비목마을사람들’과 양구군이 공동 주최했다. 통일부는 후원자 입장으로 북한이 고향인 많은 이산가족들을 주빈으로 모셔왔다. 높은 산 정상의 전망대에 들어서자 백두대간 고봉준령의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왼쪽의 봉우리는 가칠봉이고, 11시 방향의 봉우리가 스탈린 고지이며, 저 멀리 가물가물 보이는 산이 금강산 촛대봉입니다. 바로 눈앞의 건물이 인민군 초소고 그 옆의 밭이 저들이 자급자족하는 경작지이며 산허리를 휘감은 황토색 띠가 전류가 흐르던 적의 북방한계선 철조망 지대입니다."
  일반 관객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고향땅을 굽어보며 OP의 국군 장교의 지형 설명을 듣는 이산가족들과, 일반 참가자의 감회는 분명 남달라 보였다.
  "…진실로 오늘 우리는/ 그날 그대들이 흘린 피 값으로 편히 잠들고/ 그대들이 바친 목숨으로 자유로이 노래한다/ 보이느니 강바닥 진흙구덩이 높은 산 낮은 골짜기/ 지뢰 묻힌 휴전선 155마일/ 조국의 소명으로 꽃잎처럼 산화해간/ 가서 여기 한 조각 돌/ 돌 밑에 하얀 백골로 누워/ 저 강산 푸른 하늘 우러러 잠잠히 지켜 오신 영령들이여/ 무슨 말 무슨 노래로 그대들 영혼 위로할까 ……
  오늘 바람부는 벌판에/ 이름 없는 들풀로 돌아와 누워/ 쓸쓸히 바람에 나부끼나니/ 50년 쌓이고 쌓여온 불망의 이름/ 통일의 길은 어디만큼 열렸을까/ 어느날 우리 꿈으로 수놓던 고향 가는 철길 다시 놓고/ 경의선, 경원선 북으로 가는 길 달려가 볼까/ 청천강, 대동강, 안주, 박천, 정주, 의주/ 달려가 그 고향 달래강 푸른 물에/ 50년 흘린 눈물 씻어볼까 ……"
  분향과 헌다례(獻茶禮)가 이어지고 원로 성우 유강진의 ‘다시 6월에(홍윤숙 시)’가 낭송되자 객석에서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노인들이 군데군데 늘어갔다. 필자가 현충일 행사로 물망초 예술제를 구상한 의도는 간단했다. 6·25의 처참했던 비극도 이제 환갑의 세월을 지나면서 서서히 역사 속으로 퇴색해 가는 기미가 역력하다. 나라를 지켜낸 호국 영령들이나 선배 세대의 은덕은 까마득한 옛이야기들로 치부되고, 너나 없이 모두 제 잘나서 이만큼 살아가고 있노라며 자만하는 세태 일색이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봐도 답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세상이 아무리 부박하고 혼탁해도 이것만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전쟁 체험세대의 공통된 역사인식을 우리 시대의 명제로 다짐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충정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잊지 말자는 뜻을 담아 이름도 물망초 예술제로 했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5가지 역사적 책무를 신라시대의 세속오계(世俗五戒)처럼 늘 잊지 말고 계율처럼 명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물망오계(勿忘五戒)라고 명명하고 행사를 치렀다. 첫째가 6·25의 참상(慘狀)을 잊지 말자. 둘째 호국영령들의 은덕(恩德)을 잊지 말자. 세째 6·25 희생 가족들의 고통(苦痛)을 잊지 말자. 넷째 남북통일의 비원(悲願)을 잊지 말자. 다섯째 나라의 소중(所重)함을 잊지 말자.
  임진년 현충일의 첫 물망초 예술제. 그날 그 장소에서의 정서적 체험의 여파에서일까. 나는 요즘 근래 해오고 있는 촛불갈이의 의미가 무슨 형이상의 초월적 존재들(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조종하는 계시처럼 느껴지고 있다. 촛불갈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필자가 운영하는 경기도 덕소의 이미시 문화서원에 봉안소를 만들고 항상 켜놓고 있는 ‘호국의 불’을 영구히 후세에 계승시키기 위해서 계속 촛불을 갈아주는 작업이 그것이다. ‘호국의 불’은 6.25 전쟁 60주년인 지난 2010년 6월 25일 비목마을사람들이 화천 비목공원에서 진혼예술제를 거행하고 그때의 향불을 채화하여 호국의 불로 삼고 계속 전승해가고 있는 불이다.
  아무튼 이 글을 쓰기 전에도 나는 ‘호국의 불’을 조신하게 갈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단상이 전광석화로 스쳐갔다. 촛불이 타면서 만들어 내는 형상들이 도시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 것이다. 그들은 마치 눈물 같기도 했고, 순수무구한 불꽃을 받쳐주는 화판(花瓣) 같기도 했다. 맞는 말이었다. 골수 종북세력의 국회입성이니, 공직사회의 썩은 냄새니, 정치꾼들의 아비규환 등을 신문 지면에서 접하는 날이면 ‘호국의 불’의 그 기묘한 형상들은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눈물임에 영락없어 보인다.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을 이룬 나라의 저력이나 국제 상황에서 차지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위상을 상기하면, 그들은 분명 국운창성을 암시하는 길조의 서상(瑞相)들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과연 비목마을
사람들의 ‘호국의 불’의 촉루(燭淚)는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오늘의 시국을 개탄하는 순국선열들의 눈물일까, 21세기 아시아 시대를 선도해 갈 나라의 운세를 예시하고 경축하는 필유곡절의 서상(瑞相)일까.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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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무
잘 보고 감니다 .건강하세요   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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