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서울이 될 수 있을까!
김 자 호 <㈜간삼건축 대표이사 회장>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익선동 34번지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창덕궁 아랫동네, 낙원동 윗동네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 일제 식민지시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스로 해방되던 해에 태어났다. 유년시절은 내가 태어난 익선동에서 자랐고, 유치원은 3·1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경운동에 있는 태화 유치원을 다니다가, 6.25사변이 발발하면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하여 초등학교 2학년까지 초량동에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1971년 육군 소위로 전역한 이후 1979년까지 해외 유학 및 외국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반세기 이상을 서울에서 초등, 중․고등, 대학 및 사회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이 글을 쓰면서 굳이 나의 과거를 먼저 들춰보는 이유는, 태어난 곳에서 반세기 이상 살았다면 그 고향에 대해 할 말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에 대하여…… 왜냐하면 앞으로 남은 여생도 서울에서 생활하며 나의 인생을 마감하여야 하니까!
그런데 요즈음 간간이 시간을 내어 내가 어려서 자라고 놀던 동네와 학교 등을 찾아가보면, 옹기종기 모여 즐겁게 뛰어 놀던 추억이 있는 동네, 동심의 세계에서 마음껏 소리치며 뛰어놀던 정겨운 집들과 놀이터, 누구나 이 곳에 오면 순수해지지 않고 못 배길 것 같은 곳,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길이나 안마당은 저마다 개성을 갖고 변화하여 새로운 즐거움과 낭만을 선사하던 곳, 경이와 찬탄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만끽하며 걷던 곳들이 언제부터인지 전혀 다른 스케일의 삭막한 철근 콘크리트조의 건물들로 변해 버리고 있고, 옛 것은 점점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변화해 가고 있다.
이제는 옛 추억 속에만 남아있지만, 서울에는 을지로 4가에서 돈암동까지, 효자동에서 안국동을 지나 서대문 신촌까지, 동대문에서 청량리 쪽, 노량진 한강인도교까지, 전부 기억해 내기는 어렵지만 서울엔 시민들에게 편리함과 낭만을 선사하던 전차가 있었다. 지금도 유럽의 도시나 다른 선진국들 도시에 가보면 볼 수 있는 낭만의 전차가 서울에서는 격동하는 변혁기에 사라져 버린 것이 아쉽기만 하다. 현재는 그 자리에 서울시영 버스가 다니고 있지만!
곰곰이 뒤돌아 생각해보면 현대적인 면모로 변신한 서울이 그동안 발전한 것만큼 없어진 것도 많다. ‘청계천’ 만 해도 그렇다. 6.25 환도 후엔 청계천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학교 갔다 오면 지천인 안암천에서 수영도 하곤 해 부모님한테 혼난 적도 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세월에 복개돼 버렸고, 이명박 시장 시절에 복원시켜 업적으로 내걸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무원들의 행정 편의 짜맞추기 행정으로 예산만 낭비한 결과가 되었다고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천인 청계천보다 12개의 지천 정비를 먼저 했어야 서울의 옛 모습을 제대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 물길은 하류의 물을 전기모터로 끌어올려 순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기스위치만 끄면 청계천 물은 흐르지 않는다. 지천은 모두 별도로 옆으로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큰 연못 개천인 것이다.
‘광화문’ 거리도 참으로 어이가 없다. 홀로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지키고 훌륭한 업적을 쌓은 장군이라서, 그 용맹과 충성심을 국민들에게 귀감을 삼기 위해 제3공화국 시절의 산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서울의 오랜 연륜과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며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던 그 좋은 은행나무들은 어디로 가버리고 삭막한 콘크리트 광장의 땡볕 아래 난데없는 세종대왕 동상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정좌하고 있다.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대왕 기념관이나, 국립박물관에 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도 그 나라 역사를 빛낸 왕을 본인이 집정하던 앞마당에 365일 비바람에 홀로 앉아 있도록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볼 일이 아닌가 한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이 우리들의 삶의 장소가 아니고, 집정하는 사람들의 치적 쌓기와 정치적 산물의 행적으로 변신해 버려져, ‘디자인 서울’, ‘세계 관광 서울’ 등 사전에도 없는 그럴싸한 수식어로 서울을 성형 변신시켜 중독 증세까지 이른 상태의 이상한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학생 시절 우리에게 각가지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해 주던 광화문 골목길 전체가 가림막에 갇혀버린 채 또 다른 변신을 준비 중이다. 중학 시절 즐겨 찾던 메밀국수집, 입안이 얼얼한 채 땀에 젖어 즐기던 불낙지 실비집, 구수한 풍미를 자랑하던 단골 순두부집 등 추억이 어린 명소들이 모두 제자리를 떠나 정취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빌딩 속에 갇혀 있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어느 나라가 재개발이라는 명분만으로 오랜 연륜과 고유의 비방을 간직한 전통 맛집들을 한 울타리 안에 몽땅 쓸어 넣을 수 있을까!
우리들의 어린 시절 즐겨 찾고 놀던, 그리고 학창시절 힘겨루기와 학교의 명예를 걸고 시합하면서 희비애락의 눈물과 환호가 엇갈리던 그곳 ‘동대문 서울 운동장’은 어디 이상한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괴물 같은 디자인으로 변신하여 서울 시장의 업적을 자랑하는 곳으로 변해버렸으니, 이제 서울은 가림막만 하면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이상한 발상의 산물을 양산해내는 중독된 성형 환자로 변신해 가고 있다.
서울시의 주요 공사 관련 행사 때마다 정ㆍ관계 인사들은 다음 선거를 위한 선전 장소로 생각하고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누가 앞자리에 앉을지나 다투고, 정작 설계하고 공사를 진행한 설계자와 건설회사는 뒷전으로 밀려 자리도 없거나 아예 초대받지도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모든 공공기관 행사의 공통된 모습이긴 하지만, 서울시의 행사에는 개회사, 환영사, 축사, 격려사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행여 식사라도 하는 행사일 경우에는 건배사 또한 장난이 아니다. 시장 축사에서 노조 위원장까지 저마다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은 다음, 막상 식사가 시작되면 행사를 핑계로 썰물같이 모두 사라진다. 가장 남아있어야 할 사람들이 그들인데도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까지도 정치 만능과 행정 편의를 특징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형식문화의 잔재가 적잖이 남아있다. 각종 행사 때마다 눈에 띄는 관료적인 허세와 무례는 여지없는 후진국이다.
서울시민은 참으로 관대하다. 모두가 참거나 외면한 채 잘 견디고 있으니까! 서울은 600년 고도(古都)다. 마천루나 도심공원이 필요한 신생국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선량한 서울시민이 역사의 숨결과 고도의 품위를 가슴에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서울을 찾는 외국관광객에게도 국적 없는 치장으로 성형한 어설픈 모습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전통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고도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서울이 근 현대의 풍광이 공존하는 정돈된 수도의 품격을 갖추어 나가기를 절실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