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2> 국민통합 단일 국사책 만들기
- 정부에 그럴 실력이 있는지부터 따져보자
남시욱 <언론인 • 세종대 석좌교수>
정부가 발표한 중고교 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가 거센 반대에 부딪쳐 난항을 겪고 있다. 국정화 방침에 반대하는 측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범야정치세력과 전교조 및 진보좌파 시민단체들,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진보적 지식인들, 그리고 학생단체들과 이에 동조하는 좌파언론 등으로 이들은 폭넓은 연합전선을 이루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다수 학자들의 진보적 성향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지만, 이들이 주동이 되고,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도 동조하는 국정화 반대 및 집필거부 집단서명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국사학자들조차 국정교과서 집필진 참여를 기피하고 있다. 그 여파로 국정화작업의 첫 단계인 집필진구성 조차 차질을 빚을 판이다. 보수 경향의 많은 국사학자들은 현행 좌편향 검정 국사교과서의 문제점들을 대개 알고 있지만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하는 경우 어용학자로 몰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저작자] 한 아운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yalee1212?Redirect=Log&logNo=220509058167
국정교과서 편찬 성패를 가를 필진 영입
정부가 좋은 필진을 영입하는데 실패하는 경우 국정교과서 편찬은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같은 상황 전개로 인해 정부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이 과연 제대로 될지 적잖은 우려와 의문이 생기고 있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따르는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첫째, 중고교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옳고 그르고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리고 원만하게 관철되고 안되고의 문제와는 별도로 이미 공중으로 쏘아 올린 화살이 되고 말았다. 이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후퇴가 불가능한 긴박한 상황에 이르렀다. 만약 돌발변수가 생겨 반대세력에게 유리하게 국면이 전개되는 경우 반대세력은 원내외 투쟁의 강화는 물론 촛불시위 같은 극한투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교과서 문제는 교육정책의 차원을 넘는 여야갈등과 나아가서 역사전쟁, 이념전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계획을 비롯한 4대 개혁문제 등 일반국정까지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 국가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이번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시대역행적이다. 현재 국정제도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일부 권위주의정치 국가와 구 공산국가들뿐이다. 우리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도 1992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정 교과서보다는 검인정 제도 또는 자유발행제가 헌법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어 국사(교과서) 역시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그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당시 헌재는 국어 교과서의 국정제도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었다. 따라서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교과서 국정화문제를 민주 對 反민주의 프레임에 넣을 문제는 아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현재 공급되고 있는 좌편향 교과서가 전체의 90% 정도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검정제도의 장점이라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 보장은 허울 좋은 개살구 격이 아닌가.
셋째, 이번 국사교과서 국정화 결정의 배경에 대해 교육부는 현재의 중고교 검정 국가교과서의 좌편향이 너무 심해 부분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현행 교과서의 잘못된 내용을 부분적으로 고치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정부가 직접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이 걱정하는 이념 편향성을 불식시키고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헌법 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시일 걸리더라도 국민들의 동의부터 얻길
말하자면 ‘차선의 선택’을 했다는 의미다. 이 점은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교과서 국정화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데, 과연 사실이 그런지 정부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소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국민들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야당은 이 점에 대해 별다른 반박 없이 무조건 박근혜 정부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특정인물을 우상화할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직 집필진조차 정해지지 않은 단계에서 이런 말은 너무 나간 언급이다. 야당은 과연 현행 검정 교과서에 문제점이 없다고 보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여야의 어떤 주장이 옳고 그른지 언론기관 등 제3자적 입장에서 토론회를 개최해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현재 횡행하는 것은 선전과 선동뿐이고 진지한 토론은 없다.
넷째, 현재 검정 국사교과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집필진의 좌파편향과 교육부의 검정부실 때문이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9종, 고등학교 한국사는 8종이다.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의 분석에 의하면 2003년 국사교과서 검정제 도입 후 출간된 20종의 ‘한국사’ 고교 교과서 집필진 128명 중 83(64.8%)가 진보•좌파 성향이다. 특히 현대사 단원을 기술한 집필진의 경우는 36명 중 31명(86%)이 그렇다는 것이다.
필진 중에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민중사관 성향의 특정 사학연구회 또는 연구소 회원들, 그리고 특정대 국사학과 출신 인사들이 끼리끼리 모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교과서인가”라는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검정교과서와 이른바 ‘사(史)피아’의 전횡과 그들의 카르텔 형성을 10여 년간 방치한 것은 누구인가. 바로 교육부가 아닌가.
‘사(史)피아’ 카르텔을 방치한 건 교육부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2013년 8월부터 작년 연말까지 정부의 검정이 부실해 좌편향 등으로 인한 내용상 오류를 통과시킨 것이 2,736건이라 한다. 정부가 현재 밀어붙이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 조치에 적잖은 국민들이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부실한 검정 경력을 지닌 교육부가 국정화를 올바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다섯째, 작용과 역작용의 시계추가 너무 격렬해진 결과 일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새로운 국정교과서가 이번에는 우편향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이다. 국정화 반대측이 내세운 바와 같이 5•16을 미화하고 유신을 정당화하는 것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5•16은 엄연한 군사정변, 즉 군사쿠데타이다.
그렇기는 하나 경제적으로 한강변의 기적을 이룬 업적 때문에 보수세력은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정치와 인권의 후퇴는 이 기간 동안 막심했다. 그리고 유신 역시 이미 사법부가 판결한 대로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한 엄연한 위헌적인 조치였다. 우리는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는 현실주의적 역사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경우에도 그의 건국과 6•25전쟁 때의 국가수호 공로, 한미방위조약 체결 공로를 인정하되 그의 측근들의 인의 장막 때문에 빚어진 3선개헌 이후의 사실상 종신집권 기도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중고교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지난 번 통합진보당 해산 조치에 이은 제2의 힘겨운 이념전쟁이다. 통진당 해산 조치는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간 주체가 박근혜 정부였으나 판단의 주체는 헌재였다. 헌재 재판관들은 8대 1의 압도적인 비율로 통진당 해산결정을 내려 박근혜 정부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이에 비하면 이번 국가교과서 국정화문제는 전혀 다르다. 지난 10월 1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42%, 응답보류가 16%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팽팽한 싸움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여당이 절대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겠다고 공식발표를 한 만큼 이 같은 극한적인 무기한투쟁은 결국 내년 총선까지 계속되면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