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생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다. 훗날 내가 소설가가 되어 출판사에 갔더니 호칭이 선생님이다. 아이고, 차라리 생선이라고 부르세요. 졸업을 하고 나니 전교조가 생겼다. 촌지도 안 받고 애들도 안 때린다고 했다. 오히려 뒷자리 앉아 명상과 수면으로 시간을 때우는 아이들을 더 챙긴단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한 두 명도 아니고 수 천, 수 만 명이. 나는 만세를 불렀다. 1989년 노태우 정권에서 전교조는 불법 노조가 된다. 노태우가 미웠으므로 자연스럽게 전교조는 내 편이고, 우리 편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 카툰 만평을 아직도 기억한다. 해직 여교사가 단칸방에 앉아 봉제 인형에 눈을 붙이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텍스트는 “10만원이면 그럭저럭 살 수 있어요.”였다. 이런 쳐 죽일 놈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드디어 전교조는 합법화된다. 강산이 변한다는 딱 10년만이었다.

합법화와 동시에 전교조는 본색을 드러냈다. 남쪽에는 침을 뱉고, 북쪽에는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정일을 통이 크고 배짱이 있으며 예술을 사랑하고 첨단 IT에 밝은 통치자 ‘아저씨’로 소개했다. 빨치산 추모제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자랑스러운 선배들이라고 불렀다. 죽창을 깎아 현장에서 찌르기 연습은 안 시켰는지 잘 모르겠다. 학생운동이 시들해지자 더 극성을 떨었다. 전교조는 조국과 민족과 통일은 나 몰라라 학점에 스펙 쌓기에 열심인 대학생들에게서 희망을 거두고 본격적으로 초중고 학생 물들이기에 매진했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려서 한 고등학교 교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계기 학습이랍시고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가서 대통령이 실은 인간이 아니라 쥐라고 외치게 했다. 반미(反美)만이 살 길이다, 태연하게 사진을 조작해서 교제로 활용하다 크게 쪽을 팔렸다. 그래 놓고도 저들은 이걸 참교육이라고 불렀다. 참, 교육 하고는.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13년 10월 현재 전교조는 다시 법외(法外) 노조로 돌아가게 생겼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전교조에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포함하는 내용의 규약을 한 달 안에 고치지 않으면 법외 노조 통보를 하겠다.”고 통첩했다. 문제의 전교조 노조규약 9조 1항은 ‘조합원이 조합 활동을 하거나 조합의 의결기관이 결의한 사항을 준수하다 신분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때는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원 신분을 보장하고 조합원 또는 그의 가족을 구제한다.’이다.

촛불 들고 반미 외치며 빨치산 미화하는 그들

이게 충돌하는 것이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제 2조를 보면 ‘교원노조법상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교원은 현재 교원으로 근무하고 있거나 해고되었더라도 노동위원회의 구제신청을 해서 재심판정이 있기 전인 사람만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에는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해 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시, 당해 노동조합을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음을 통보해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길게 썼지만 복잡한 이야기 아니다. 빼고 더할 것 없이 그냥 법을 지키라는 얘기다. 지키기 싫으면 법 밖으로 나가라는 얘기가 정부의 뜻이다. 그런데 전교조는 기꺼이 법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고는 전면전 태세를 갖췄다. 법외 노조 통보 당일 규탄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이후 전국 16개 지부 별로 집회를 벌이고 법외노조가 취소될 때까지 전국에서 매주 촛불 투쟁을 진행한단다.

학교 안에서는 학생의 날인 11월 3일과 전태일 열사 43주기인 11월 13일까지 ‘학생인권과 교사의 노동기본권의 문제’라는 주제로 공동수업을 진행하고 학교 앞 1인 시위, 학부모에 편지 보내기 등 활동을 할 계획이란다.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겠다는 이야기다. 화력도 막강하고 방법론도 다양하다. 일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40여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변호인단이 통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및 취소 소송을 위해 대기 중이다.

EI(세계교원단체총연맹)와 함께 ILO(국제노동기구) 결사의자유위원회에 한국 정부를 제소할 예정이다. UN 인권이사회에도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와 함께 진정서를 제출하고 특별 보고관 방한을 요청할 계획이다. 4개 야당에도 노조설립 취소 조치 유보와 긴급 개입을 요청한단다. 요즘 애들 말로 하면 ‘흠쫌무’다. 참고로 ‘흠쫌무’는 ‘흠, 이게 사실이라면 쫌 무섭군’이란 뜻이라나?

낡고 낡은 현대사 이해를 무기 삼아 정부와 겨루자고?

이 모든 것이 겨우 9명의 해직자 때문이다. 이들을 내치지 않기 위해 이 엄청난 수고를 강행하겠다는 얘기다. 당장의 손해는 만만찮다. 법외 노조가 되면 조합원 월급에서 원천 징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제난이 닥친다. 가뜩이나 조합원은 줄고 소송비용은 늘어나 긴축 살림 중이다. 사무실 지원 등 교과부와 시, 도 교육청의 지원도 끊긴다. 역시 돈과 관계된 손해다. 그 뿐이 아니다. 단체 교섭권이라는 무기도 없어진다. 지부에서 근무하는 전임자들은 다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다 열거하다가는 이 지면으로는 턱도 없는 유형, 무형의 손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왜? 이미 눈치 채셨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산수가 아니라 정치라는 사실을. 고용노동부의 통첩을 받아들이는 순간 멱살을 잡혔으니 뺨을 때릴 것이고 당황하는 사이 복부에 훅을 넣은 다음 눕혀 놓고 ‘파운딩’이 들어올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마친 것이다. 지난 16일부터 사흘 간 진행된 조합원 찬반 투표는 이를 잘 설명해준다.

투표에 앞서 전교조 본부는 득실을 이렇게 정리해 제시했다. 수정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박근혜 정권의 탄압을 막아낼 사회ㆍ정치적 힘이 현저히 부족하고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단체교섭이 제한되고 노조 활동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수정 명령을 수용하면 전교조의 자주성과 투쟁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 ‘수용 거부의 경우’에는 단서가 붙었다. ‘법외 노조가 되더라도 조합 활동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참 간악한 예시다. 둘은 부딪히지 않는다. 논리상 매끄럽게 이어진다. 실은 한 문장이다. ‘거부할 경우 노조 활동이 위축될 수 있으나 자주성과 투쟁성은 지킬 수 있고 어려움은 있겠지만 극복 가능하다.’로 정리 가능하다. 

그래도 평균으로 치면 최고의 학력을 가진 조합원들이다. 민주노총의 브레인 소리까지 들었던 단체다. 그런 사람들이 교묘한 논리에 말려 70% 가깝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진심일 것이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지금 전교조에는 젊은 층이 거의 없다. 20대의 비율은 2.6% 밖에 안 된다. 대부분이 30대 이상이라는 이야기인데 신규 가입자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으니 주축은 대략 40대가 될 것이다. 이 말은 전교조의 사고가 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다.

80년대는 한국 현대사 학습이 오로지 한 방향에서 진행된 시기다. 줄여 말하자면 동학이 의병으로 이어지고 의병이 독립군이 되었으며 이들이 남한의 친일, 친미파 정부에 의해 배제된 부끄러운 역사로 대한민국을 이해했다. 지금까지 시효 만기된 그런 헛소리를 굳게 믿고 있는 저들은 싫을 것이다. 유신의 딸과 함께 살아가는 게 도통 내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 기관까지 나서서 선거 부정을 저지른 게 틀림없고 그 기관만 아니었으면 지금의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차에 한 판 붙어야겠다는 이야기다.

전교조의 강경투쟁은 기회의주의적 패착에 불과할 것

투표 직후에 나온 전교조 발표문을 보면 아주 명확해진다.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를 무력화시켜 특권경쟁교육을 뿌리내리고 민주주의 역사를 친일과 독재의 역사로 분칠하고 미래의 유권자들을 전교조 교사들로부터 분리해 수구보수정권의 영구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좀 많이 나간 거 아닌가. 그저 규약을 지키라고, 법을 지키라고 한 것뿐인데 민주주의를 들먹이고 수구보수정권의 영구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니. 이들의 현실 인식 수준이 이렇다.

그럼 전교조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그 나름의 절개가 있는 조직일까. 지난 7월부터 교육부와 진행한 단체협약 교섭 내용을 보면 세상에 이런 이익단체가 없다. 몇 개만 보자. 소속 교사들의 내년 기본급을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일괄적으로 10%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교육부가 전세금 6억 원을 지원한 전교조의 서울 영등포 현재 사무실 대신 2배 이상 넓은 사무실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무실 임차료와 임차료 인상분을 매년 정부 예산에 반영해 전액 지원해 줄 것도 요구했다. 만 13세 이하의 자녀를 둔 교사에게 는 월 10만원의 보육수당을 별도 지급하고 소속 교사가 국내외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이 기간을 유급 연수 기간으로 인정하고 대학원 학비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했다. 쉽게 말해 신의 직장, 신의 노조로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전교조가 요구한 총 363개 항목 중 228개가 위법이거나 교육부 권한 밖의 사항이라는 것이다. 무려 62%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은 정말 황당하다. 교육부와 맺을 단체협약이 관계 법령과 충돌할 경우 전교조에 유리한 단체협약을 우선 적용해 달란다. 법은 잘 모르겠으니 닥치고 요청대로 해달라는 주장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