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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발언과 총리 후보자의 발언 사이
조우석   |  2014-06-24 13:50:48  |  조회 3286 인쇄하기

함석헌 발언과 총리 후보자의 발언 사이

 

- 좌파가 하면 좋은 말이고, 우파가 하면 ‘공공의 적’?



조우석 <문화평론가>

 

 

누구의 판단이 맞을까?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둘러싼 여야(與野)의 엇갈린 시각 차이는 너무도 커서 과연 접점이 있기는 할까? 김한길 새민련 공동대표는 얼마 전 “온누리 교회에서 했던 문 후보자의 궤변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을 능멸하고, 함부로 하나님을 팔아 하나님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고, 반(反) 문창극의 여론이 넓게 퍼져 있다.
기독교인을 포함한 원로 언론인 그룹, 그리고 동영상 전체를 유심히 본 사람들의 판단은 그와 또 다르다. 문 후보자의 논란 발언이 담긴 1시간 10분 분량 교회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본 뒤 “기독교인으로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발언인데 일부 언론이 악의적으로 짜깁기 보도해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이번 사안은 총리 임명동의안을 둘러싼 인사청문회와 국회 비준이라는 절차 이전에 일부 언론의 마녀사냥에 의해 촉발됐고, 그 결과 국론을 분열시킨 사건이다.


문창극 후보자 사태는 참과 거짓의 게임인데…


이 때문에 너무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참과 거짓의 게임이라는 말도 나온다. 편견 없이 문창극 발언 전체를 살필 경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고 반역사적, 반민족적, 제국주의적인 사관을 가진 인물”이라는 성균관 측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비분강개가 과연 맞는 소리인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에 사건 초기에는 문창극이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며, 그래서 문창극은 친일파이며, 나쁘다는 비난이 초강세였다.


공영방송을 포기한 채 선동방송에 나선 KBS의 보도 이후의 상황인데, 전체 맥락을 살피면 우리 역사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게 드러난다. 기독교 신앙고백으로서의 세계관인데, 실은 문 후보자의 발언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쓴 함석헌 선생의 역사 해석과 맥락이 같다. 신문방송의 보도가 나온 즉시 필자는 문창극 발언에서 함석헌의 흔적을 떠올렸다. 그게 문 후보자의 평소 신념임을 필자는 알기 때문이다.


상식이지만, 함석헌은 우리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규정했다. 그의 역사관으로 보자면, 한국은 “수난의 비렁뱅이”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이 있다.  “수난의 여왕이 새날의 임금을 낳으려고 하는 산통의 부르짖음이 6• 25이다. 4•19, 5•16이다. 그런데 낳을 힘이 없다. 아기를 낳게 되어가지고도 낳을 힘이 없다는 계집아, 너와 아기가 죽을 것이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우리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규정했던 원조(元祖)는 함석헌


본래 일제시대 쓰여졌던 것인데, 함석헌은 그 책을 1965년에 대폭 개정했다. 하지만 책의 성격은 여전한데, 그가 고통스럽게 던진 물음은 ‘왜 우리는 그렇게 고난을 겪었을까?’였고, 고뇌 끝에 찾은 답은 ‘섭리’였다. 우리 역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밝혔다.


“나를 건진 것은 믿음이었다. 이 고난이야말로 한국이 쓰는 가시 면류관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역사를 뒤집고 그 뒷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 전체가, 인류의 가는 길 그 근본이 본래 고난이라 깨달았을 때 여태껏 학대받은 계집종으로만 알았던 그가 그야말로 가시 면류관의 여왕임을 알았다.”


해방 전후 등장했던 많은 단행본 중 ‘20세기 한국•한국인의 책 10권’을 꼽을 경우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넣자고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책이 젊은 층에게 줬던 영향력까지 포함한다면, 당당히 꼽힐만하다. 더구나 그가 쓴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그 책이라서 지금 함석헌은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와 함께 재야 민주화 세력의 원조로 꼽힌다.


그게 놀랍고, 희한하지 않은가? 똑 같은 내용의 고난의 한국역사를 함석헌이 말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외려 지식인다운 의식 있는 태도라고 치켜세운다. 반면 그걸 총리 지명자를 포함한 우파 진영의 사람이 말을 하면 바로 역적 취급을 하며 공공의 적으로 몰아간다. 이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한국 지식사회, 문화계와 언론 전체의 현주소다. 이토록 분열되고, 이토록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즉흥적으로 피아(彼我)를 구분해 사회적 소동을 벌이는 나라가 있을까? 어찌된 영문일까? 우선 KBS가 문제다.


이토록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소동 벌이는 나라 있나?


그 방송은 9시뉴스에서 문 후보자가 “일본의 지배는 하나님의 뜻”,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민족 DNA가 있다” 등 민족비하 발언을 했다고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를 했다. 뭔가 트집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야당은 즉각 총리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나서는, 아주 몰상식한 결정을 내렸다. 더 몰상식한 건 그 직후다. 조중동과 종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언론이 KBS 보도의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이 사안에 접근했다.


사실 공영방송 KBS 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총리 후보자의 발언으로 부적절하다. 하지만 전체 강연내용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전체 영상을 본 시청자들이 KBS 게시판에 왜곡보도, 짜깁기 편집을 비난하는 댓글을 수십 건씩 달았을 정도다. 문 후보자 측에서 KBS의 이 같은 악의적 오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정면 대응한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실 ‘게으른 DNA’ 발언은 KBS 해석과 오히려 정반대 의도로 말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문 후보자는 영국 지리학자 비숍 여사의 저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7년)을 인용해 조선사람들이 더럽고 게으르지만,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한결같이 러시아인보다 더 깔끔하고 부지런했다는 것도 말했다. 그런 앞뒤 잘라내고 ‘조선인은 게으르다’고 말한 것처럼 편집한 것은 한 공인을 죽이려는 공영방송의 의도가 얼마나 음험한 지를 보여준다.


이런 왜곡보도에 상당수의 정치인은 오버를 한다. 야당 의원인 박지원 청문특위 위원장이 일찌감치 “문 후보는 총리감이 아니라 국민감도 안 된다. 이런 역사 인식을 가진 분이 총리가 되면 심각한 외교 문제까지 발생할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열려도 보고서 채택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며 청문회 보이콧을 주도했다.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에 오를 자격조차 없다는 정치적 성격의 예단(豫斷)이 분명하다.


보수우파는 아예 공직(公職) 진출 꿈도 꾸지 말아야 할 판?


문창극 죽이기는 속된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의 이중 잣대라는 게 드러났다. 분열과 대립의 끝을 달리는 대한민국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놓고 소동을 벌이고 이게 국가 전체의 에너지 낭비로 이어지니 가히 한국병이다. 어제 오늘 한국사회 분위기는 보수우파 쪽의 인사는 아예 공직(公職)에 진출할 꿈도 꾸지 말라는 식이다.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정당한 우파의 목소리에 ‘극우’라는 고약한 딱지를 붙이기 일쑤인데, 최소한 언론•지식사회의 경우 좌파 전체주의 사회가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한 듯하다. 이의제기를 하는 이도 드물다. 문창극 사태는 그걸 보여준 한 판의 잔인한 소극(笑劇)이었다. 헌법이 명문화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신념을 가진 사람을 ‘이념 검증’을 하겠다고 모든 언론이 달려드는 판국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런 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현재로선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런 한국병이 쌓이고 쌓여 2010년대 초입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는 정체상태이다. 한국적 활력은 여전하다지만, 사회 전체는 우울증에 빠져있다. 실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이제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마저 밝히자.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그 책은 좀 과대평가된 케이스이다. 실은 저자도 그렇다. 함석헌은 재야 지식인의 표상으로 높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겠지만,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는 종교인 내지 문사(文士)의 한 명 정도로 분류해야 옳다. 그가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장점인 탁월한 구어체의 글 솜씨와 책에 배어있는 충정은 충분히 인정한다.


실은 함석헌의 역사인식은 이미 낡았다

 한 시절 읽는 이가 누구라도 피를 잠시 끓게 하는 매력이 있고,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던 역할도 대단했다. 하지만 좀 낡은 책이 분명한 게 개정본이 나온 1965년 이후 우리사회는 천지개벽했다. 식민지 체험, 분단과 전쟁의 질곡을 뚫고 대한민국은 20세기 지구촌의 신데렐라 국가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 중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난 몇 안 되는 국가이며, 더 나아가 근대적 산업경제를 건설하고, 안정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정착시킨 국가”다.


그건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 그렉 브라진스키의 저술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원서 제목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에 등장하는 말이다. 신데렐라 국가로 일어선 한국 현대사는 함석헌 류의 패배주의를 실로 시원하게 넘어선 기적의 역사이다. 이런 천지개벽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함석헌 책을 다시 읽어보시라.


우리는 이미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지평을 시원하게 넘어섰다는 자부심이 한편에 들 것이고, 그래서 좀 낯설고 낡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으실 것이다. 문제는 그런 함석헌의 책은 1980년대 전후 한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과대 포장되고 과잉 해석이 진행돼 왔다. 좌파 진보 지식인 그룹은 그걸 도그마로 삼아 선악사관과 흑백논리로 한국현대사를 전면 재해석했다. 그래서 1960~70년대 개발시기를 회고할 때 습관처럼 “암울했고, 어두웠던 역사”라고 말한다.


이승만의 1950년대 역사 역시 민족의 자생적 꿈이 외세에 의해 깨졌다고 단정한다. 19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 역사를 정통성이 없다고 규정하는 것도 예사이다. 본래 함석헌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 역사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용서는 매 맞은 사람이 할 수 있다는 말이었고, 진정한 사랑과 용기를 갖고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보자는 제안이었다.


그게 문제는 좀 있고, 낡은 게 사실인 함석헌 발언에 대한 최대치의 평가이다. 문창극의 발언 역시 그런 맥락이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동이 벌어졌고, 한국사회에 또 한 번의 생채기를 남겼다.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광란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사회의 2014년 여름은 그래서 세월호에 이은 또 한 번의 위기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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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eman
그때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함석헌 선생의 책을 다시 한번 책꽂이에서 빼어 조금 읽어보았고 인터넷 자료도 찾아보았다. 같은 맥락이다. 지금와서도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런 이야기에 흥분해서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소리치는 현실이 안타깝다.   14-08-24  
노암거사
반일을 외쳐야 애국인 척, 그래야만 인기가 유지되고 몸값이 유지되는 소위 짝퉁글쟁이들의 인기영합적 편협한 성향의 한국적 현주소다. 진리를 말하는 용기가 멸실되고 총체적으로 포퓰리즘에 찌든 망국적 한국병이다.   14-06-26  
백덕열
내가 외도하면 로맨스, 남이 외도하면 스캔들. 남과 북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왜 이렇게 박터지게 싸워야 하는 것일까? 옛말에 호강에 바쳐서 요강에 X 싼다는 말이 문득 생각 납니다.   1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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