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의 현주소를 묻습니다
우창록 (재)굿소사이어티 이사장
몇 해 전 계간지 <창작과 비평> 정기구독자 사은품인 창비사 발간 도서목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 나오는 잡지는 어떤가?” 그게 궁금했던 것인데, 요즘 주목되는 이슈는 물론, 최근 지식사회의 흐름을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 아시듯 <창작과 비평>은 1970년대 초 지식사회의 첨단 매체로 등장한 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사회과학 전성시대를 주름 잡았던 핵심 잡지였습니다. 생각 있는 젊은이라면 거의 모두 읽었고, 당시 이름 높다는 논객들이 두루 필자로 참여했다는 것까지도 모두 기억합니다.
지금은 예전과 위상이 달라졌다지만, 단행본 출판사 창비를 통해 나오는 책들의 변화도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목록만 대충 봐도 그게 감지됐습니다. 1980년대, 1990년대 초에는 사회주의적 성향과, 서구 신좌파의 성향을 일부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념적으로는 중도 좌파, 내용적으로는 좌파 민족주의 성향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사회 구조에서 쉽지 않았던 좌클릭의 시도였지요. 놀랍게도 최근에 나오는 책들은 더욱 색깔이 진해졌다고 할까, 과감해졌다고 할까 하는 변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의 눈치, 제도권의 견제를 거의 안 보고 있으며, ‘나 홀로 목소리’에 충실합니다. 나름대로 자기 논리에 충실하게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지요.
법치주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 변화
많은 분들도 그런 견해이니, 저만의 독단은 아닐 듯합니다. <창작과 비평>의 변화가 곧 한국사회 이념 분화를 상징할 수 있을까요?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잡지는 한때 문화 권력을 상징했고, 지금도 좌파 지식사회를 리드하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그들은 반외세, 반미 그리고 민중을 말하곤 합니다. 실은 그 잡지와 출판사의 대주주인 백낙청 교수도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지식사회는 물론 신문 정치면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범 좌파세력의 좌장으로 국내 현실정치를 움직이는 그룹의 핵심입니다.
평범한 생활인인 제가 어떻게 한국사회의 이념분화의 현상을 잘 알겠습니까? 저에 대한 재미있는 평가가 이러한 문제를 짚어 보게 하였습니다. 진보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보수화 되었다는 평가를 하더군요. 저는 스스로 한 번도 진보적 사고를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긴장 관계 하에서 저는 항상 자유에 무게를 두면서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다소간의 실망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의식 있는 사람은 모두 진보적이어야 한다? 그 자체가 특정 진영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프레임, 즉 독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 의식 있는 사람은, 지식인은 진보 좌파이어야만 합니까? 왜 이런 말을 꺼내는가 하면, 이달 굿소사이어티 이슈레터의 주제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관한 논의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진보연하는, 좌파연하는 논리는 지식사회는 물론, 젊은 층에서도 널리 자리 잡았습니다. “강남 좌파”라는 어휘도 만들어졌지요.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는데, 더욱이 인터넷, SNS, 블로그 등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더욱 강화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즉, 지식사회와 젊은이들의 좌편향과, 뉴미디어의 좌편향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습니다. 이번 달은 그걸 좀 짚어보려 합니다. 실은 유튜브, 팟캐스트 등 신 정보기술이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우리 세대는 잘 모릅니다. 안타까운 것은 책임 있는 보수 우파 진영이 이 새로운 사이버 세계의 전개에 낯가림이 심하거나, 당황해 하고 있고, 그 동안 사실상 이러한 매체를 제대로 활용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이번 달 기획을 ‘인터넷 포탈의 현주소를 묻는다’로 잡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SNS, 팟캐스트,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많지만, 역시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재래식 신문이나 지상파 TV의 영향력을 추월한 지 오래고, 젊은 층이 정보를 얻는 새로운 공간입니다.
인터넷 실명제 폐지 결정, 그 이후가 궁금하다
점차 모바일로 권력이 옮겨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포털의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어떤 논객의 지적대로 포털은 인터넷 상에서 경제와 정치, 언론까지 장악한 우리시대 강력한 매체입니다. 그들이 정보 검색 기능과 언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월 말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인터넷 실명제를 위헌(違憲)이라고 결정을 했습니다. 사회환경에 큰 변화인데, 정작 이렇다 할 사회적 논의는 드물거나 없었습니다.누구나 쉬쉬 합니다. 굿소사이어티가 주창하는 가치의 하나가 법치주의 구현인데 이러한 우리의 시각에서 포털 문제의 현주소를 훑어보려 합니다.
왜 일부로부터 포털은 하수도 문화 증폭의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지부터 따져봅니다. 잘 선용할 경우 잠재력을 가지지 않을까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일부 포털의 부적절한 언론 행위를 확인하는 글도 과감히 실었습니다. 포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대기업 비판, 특정인 띄우기 등은 민주주의의 기초인 쌍방향 토론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이걸 방치할까를 이 기회에 짚어 봅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최대의 사이버 권력인 포털을 마냥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의도가 결코 아닙니다.
과연 포털이 어느 보수 논객의 지적대로 집단 사기에 불과한가, 아니면 새로운 잠재력을 가진 우리 시대 새로운 ‘네트워크 공론장(公論場)’일까를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좀 무거운 주제를 커버스토리로 내세워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토픽임이 분명합니다. 그토록 무더웠던 여름이 물러갔습니다. 더욱 청신해진 가을, 회원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