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之文 (고려대교수. 영문학)
“해국행위를 애국행위로 착각하는 사람들 : ‘촛불시위’로 그토록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불안을 조성한 세력들은 광우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고 반미, 반정부 투쟁이 자신들의 정의감과 용기를 입증해 준다고 착각했던 것... ”
애국심 발현의 방법
1960년대에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이종우박사는 재임시 하루도 빠짐없이 퇴근하기 전에 전교를 돌면서 소등(消燈)이 다 되었고 수도꼭지가 전부 잠겨있는가를 점검하셨다고 한다. 참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오늘날 총장의 애교(愛校)는 같은 형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총장은 학사행정을 주관하고 학교의 홍보와 발전기금 모금을 위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사람이라서 전기, 수도까지 직접 챙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도 총장의 애교심이 전기, 수도 점검보다는 다른 형태로 발휘되기를 원할 것 같다.
년 전에 어느 교양강좌에서 직전 국사편찬위원장이신 정옥자교수가 “보통 나라가 망할 때 선비에게는 은둔, 망명, 자결의 세 가지 애국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간송박물관 설립자) 전형필선생은 선대에게서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수집함으로써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고 파손되고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으로부터 구했다. 이것도 아주 훌륭한 애국이다”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조용한 애국
최근에 우리나라 고고미술사학의 선구자로서 우리나라 고미술의 계통을 정립하고 제자 양성으로 고고미술사학이라는 학문을 수립한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와 면담할 기회를 가졌다. 고미술을 사랑하는 분이라 으레 만만치 않은 알짜, 희귀 고미술품의 컬렉션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안교수는 자신은 절대로 미술품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말씀했다. 미술사학자가 미술품을 수집하면 자신의 소장품 사진을 자기 저서에 쓰게 되고 그러면 그 작품의 가격이 올라가서 결국 자신의 학문으로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꼴이 되기에, 엄정한 연구와 평가를 위해 수집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작품을 소장하면 자신이 소유한 작품이나 화가에 대해 애착이나 편애하는 마음이 생겨서 사심없는 눈으로 미술품을 평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도 했다. 나는 안교수가 정말 훌륭한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는 애국을 국난의 시기에나 필요한,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생명을 내 놓고 해야하는 일로 생각하는데, 우리는 안교수처럼 평화시에도, 평화로운 방법으로도 훌륭한 애국을 할 수 있다.
거제도에서 ‘애광원’을 경영하고 있는 김임순원장은 한국전란의 와중에서 그야말로 난데없이 7명의 부모없는 영아를 돌보게 되었는데 그들을 두고 도망칠 수 없어서 고아원을 경영하게 되고, 전쟁고아들이 성장해서 떠나고 우리나라의 고아원 형편이 나아지자 세계각국의 교회를 돌며 모금을 해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장애아, 장애인의 수용시설과 학교, 재활병원을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맛보게 해주고 있다. 나는 선량하고 소박한 김원장에게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본다.
가곡 “비목”의 작사자이기도 한 한명희 전국립국악원장은 60년대에 최전방에서 군 복무를 할 때부터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혼령들을 위로하고 안식케 해 주고 싶다는 염원을 지니고, 은퇴 후 모든 한국전 희생영령들과 참전국들의 도움을 기리는 평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10년째 백방으로 고투하고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의 편집국장을 역임한 홍순일선생은, 신문기자들이 봉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고 거의 ‘촌지’로 살았던 시절에 국문일간지에서 여러번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한국과 재한 외국인들 사이의 가교로서 영자지의 존재가 중요하기 때문에 ‘촌지’가 거의 없었던 영자신문에서 계속 봉직했다고 최근에 어느 언론인 잡지에 기고한 회고록에서 술회하고 있다.
원로 불문학자 김화영교수는 발자크의 소설 “마담 보바리”를 번역할 때, 인근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각양각색의 마차를 타고 파티장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그 마차의 규모와 스타일로 타고 온 사람들의 재력과 취향을 시사하려는 발자크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온 유럽의 마차박물관을 다 가 보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해국행위를 애국행위로 착각하는 사람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영웅은 평화시에도 파괴적인 행동으로만 자신의 영웅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재작년 ‘촛불시위’로 그토록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불안을 조성한 세력들은 광우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고 반미, 반정부 투쟁이 자신들의 정의감과 용기를 입증해 준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일제강점기의 상황에서 민족문화와 정신을 보존하고 민족적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김성수선생같은 위대한 민족지도자를 서슴없이 ‘친일파’로 매도하며 우리 민족의 명예와 자존심을 손상시킨다. 공자님이 말씀한 ‘사이불학즉 태’(思而不學則殆: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남을 미워하는 구호를 쏟아내어서 자신의 애국심을 인정받으려 하기 전에 올바른 처신으로 자신이 애국시민임을 입증해야 한다.
애국의 도구로서의 자신 가꾸기
일찍이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은, 농작물을 제때에 수확을 하는 농부, 튼튼한 목재에 나사를 확실히 조이는 조선공, 좋은 벽돌을 잘 갠 접착제로 쌓아 올리는 건축업자, 거실의 가구를 잘 손보고 부엌에서 낭비를 막는 주부, 그리고 자기의 목소리를 잘 가꾸고 과도하게 쓰지 않는 가수가 모두 자신이 속한 국가의 부와 안녕에 기여하는 진정하고 궁극적인 애국자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내가 만드는 물건, 내가 짓는 건물, 내가 길러내는 학생을 틀림없는 우량품으로 만든다면 우리나라는 부강해 지고 우리 사회는 명랑해 질 것이다. 그에 더해 한가지의 애국적 습관--아이들과 하루에 한 시간씩 놀아준다거나 내 집 앞의 눈을 치운다거나 일회용품의 사용을 되도록 줄인다거나 하는--을 몸에 붙인다면 우리는 어떤 ‘애국’을 외치는 사람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서지문
학력: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미 웨스트.죠지아 대학 영문학석사
미 뉴욕주립대학교 영문학박사
1978년 이래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
1988-89 미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초빙 연구교수
1991-92 한국영어영문학회 이사
1994-95 한국아메리카학회 이사
1992년도 한국여성학회부회장
1999-2000년도 미 스탠포드대학교 연구교수
2002-03 고려대학교 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