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20대의 천안함 읽기
박성희   |  2010-07-08 07:59:11  |  조회 2910 인쇄하기

20대의 천안함 읽기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20대 3천명의 80% “북한 소행 아니다”

대학생의 키워드는 정부불신과 전쟁공포

북한을 믿어서가 아니라 정부를 못 믿는 것이 20대의 시각

젊은이와 소통하려면 정보의 전파속도에 기민해야

 

‘북한이 주범?’ 한 대학생의 대답

 

“20대는 북한에 대해 맹목적 두려움이나 적개심을 주입받으며 자라난 세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동포이기 때문에 북한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북한은 다른 나라인데 인접한 국가로 인식되고 있으며, 전쟁도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따라서 북한이 천안함 사건의 주범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20대는 많지 않다. 정부의 발표에도 불신의 목소리가 더 큰 편이었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북한일지도 모른다는 보도를 할 때는 몰아가기 식 보도라는 느낌이 컸다...”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마음의 공동체’는 무엇일까. 천안함 사태에 대한 20대의 시각을 묻는 질문에 한 대학생은 위와 같이 답했다.

 

다른 학생들도 표현의 방법이나 수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한 의견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대학생의 키워드를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전쟁에 대한) 경각심으로 요약했다. 평화를 키워드로 한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그래서 젊은이들의 공감을 샀다.

 

어떤 학생은 초반에 냉정하고 차분하게 지켜보다 보수언론들의 보도에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이 운영하는 다음 카페에서 20대 3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 본 결과 80%가 “북한 소행이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인터넷 상의 조사여서 다소 부풀려질 수 있으나, 실제로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이는 천안함 조사 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답한 27%(동아일보 여론 조사결과)의 일반 국민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그들은 그래서 투표장에 갔다.

 

20대에게 천안함 사건의 쟁점은 북한이 아니라, 조사와 발표를 둘러싼 현 정부에 대한 불신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져있다. 때 마침 지방선거와 시기적으로 겹치면서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었고, 20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움직였다. 트위터 등으로 서로를 독려하며 투표장으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이다.

 

46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지 달포가 지났지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여전히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한다. 다국적 조사단과 과학자가 진실규명에 참여했고, 쌍끌이 어선이 바다 밑에서 인양한 어뢰 프로펠러와 거기 적힌 한글 ‘1번’이 침몰의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하는 유력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의 신뢰성에 여전히 의문을 표시한다. 증거란 본디 상대방이 얼마나 믿어주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논쟁의 장(場)이 달라지면 설득의 논리가 바뀌고, 요구하는 증거도 따라서 달라진다. 젊은이들이 주를 이루는 논쟁의 장에서 어뢰 프로펠러는 적어도 증거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뜨겁고 차가운 전쟁을 다 겪은 세대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비교적 잘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반도기(하늘색 바탕에 한반도 모양이 흰색으로 새겨진)를 보고 자란 우리나라 20대는 북한과 천안함 사건을 보는 시각은 부모 세대와 다르다.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에도 그 이유나 논거가 다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그들의 마음의 공동체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미래의 세대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아무리 중요성이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이나, 의견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은 세대 간 통합과 소통의 문제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냉전사고와 절연한 20대

 

“천안함 사건은 당연히 북한이 주범”이라는 일부 시각에 20대는 “북한이 대체 왜?”라고 반문한다. 진실성에 기반 했든 포장된 것이든, 북한과의 화해모드를 상당기간 목도하며 자란 이들에게 북한이 적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느덧 북한은 성큼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금강산이 열렸고, 개성공단이 돌아가고 있다. 한국의 학생들은 북한이탈 청소년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방학 때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냉전시대 사고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북한의 소행임을 설득하기 위해서 어뢰 프로펠러 이상의 증거가 요구되고, 보다 신중한 정보의 접근, 전달, 해석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천안함 사건의 쟁점으로 북한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오히려 사건을 규명하는 정부의 신뢰도와 정보의 투명성에 주목해 사태를 파악한다. 뜨거운 교육열 속에서 담금질하듯 커온 젊은이들은 무지하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해 살고 있어 정보에 어둡지도 않다. 고된 학업의 터널을 지나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는 다시 취업과 스펙의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이들에게 정부는 이미 얼마간의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천안함 사건을 보는 20대의 시각을 “북한을 믿어서가 아니라, 정부를 못 믿는 것”이라고 보았다. 메신저를 못 믿으므로 메시지를 믿지 않는 것이지, 북한을 믿어서가 아니라는 해석이다.

 

“북한을 믿어서가 아니라, 정부를 못 믿는 것”

 

정부를 불신하는 이들은 정부가 천안함 사건의 조사나 발표의 전 과정을 지방선거에 이용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상식적으로는 보수층에 유리한 선거의 ‘호재’가 지닌 메시지의 효과를 미리 갈파하고 역으로 대응할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학습이 잘 되어 있다. 젊은이들도 이에 예외가 아니다.

 

20대의 광장, 인터넷

 

20대가 소통하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실시간으로 정보가 유통되는 시대다. 신문이나 방송이 기사를 작성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몇 장의 스틸 사진이나 글솜씨 좋은 기자들의 묘사가 무색할 정도로 생생한 동영상을 접하며 뉴스를 소비한다. 정보 공개의 적정선, 전문가의 해석, 정부의 대응, 주류언론의 논평은 이러한 신속한 정보의 유통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섣불리 공개를 차단했다간 은폐의 의혹을 면치 못하고, 중립성을 잃었거나 겸손하지 않은 전문가는 네티즌들 틈에서 바보취급 당하기 쉽다. 주류언론이 네티즌보다 앞서서 흥분하면 선동하려는 의도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정보가 공개되는 속도에 발표와 논평이 미치지 못하면 무능력하거나 무신경한 것으로 비친다. 결국 정보의 전파 속도에 얼마나 기민하게 반응하느냐가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20대가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고 살아 북한에 대한 스키마(schema)가 형성되지 않았다거나, 인터넷을 매개로 한 소통의 달인이라거나, 정부와 기성세대를 대체로 불신하는 젊은 세대 특유의 진보성향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20대가 외부 세력의 의도적인 개입에서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20대의 ‘마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청소년기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혹은 젊은이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어떤 외부 세력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논리를 펼 마땅한 증거도 없는데다 논의의 초점이 완전히 달라지므로 논외로 하려고 한다. 자유세계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이들은 자유롭게 사고하며 독립적으로 행동한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20대 안에서도 편차가 존재해서, 80년대 태어난 이들과 90년대 태어난 이들이 같을 수 없고, 대학생과 직장인이 같을 리 없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은 젊은이들 사이에도 적용될 것이다. 따라서 위에 기술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내가 속한 대학의 젊은이들과 그 주변의 말과 생각의 조각들을 주재료로 삼고 있음을 밝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642 야권 대통합론에 묻는다  홍진표 10-10-06 2879
641 재판에 웬 보수?, 진보?  이주흥 10-09-13 3908
640 MB정부 초심으로 돌아가라   안종범 10-09-13 2977
639 정운찬 총리의 사임 발표를 보며, 한국정치를 생각한다.   1  박길성 10-08-04 3446
638 [서평] 콜로서스 - 아메리카 제국 흥망사  강규형 10-08-04 3867
637 토론으로 배우는 역지사지  허경호 10-08-04 3283
636 감격적인 광복, 역사적인 건국 8.15   강규형 10-08-04 3247
635 오늘, 한국에 던지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메시지  15  이철영 10-07-08 4618
634 진보교육감의 약진, 그 기대와 우려  1  이성호 10-07-08 2900
633 20대의 천안함 읽기  박성희 10-07-08 2910
11121314151617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