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신정아사건’이 터졌을 때, 학력위조 사실은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신정아가 출국을 하면서 노기등등한 표정에 자기를 속인 ‘가정교사’를 잡기만 하면 당장 물고를 낼 듯한 기세였던 것이 놀라웠다. 가짜 학력을 가지고 미술관의 큐레이터로서 미술계를, 교수가 되어서 학계와 교수사회, 학생을, 그리고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되어 국가와 국민을 기만한 자기의 죄와, 가짜 학력을 가지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자기를 속인 그 존 트레이시라는 사람의 죄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신정아는 그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구속 중인 신정아는 감방 속에서도 그 트레이시라는 사람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자신의 모든 불행, 자신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 불미한 파문이 모두 그 트레이시의 탓이라고 확신하고 있을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억지로라도 자신이 옳았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철저히, 뼈저리게 깨닫고 참회하기 전에는 마음의 평화를 향한 첫 걸음도 뗄 수 없다. 내가 남을 속인 것은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일이고 나를 속인 사람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한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새 삶을 바라볼 수 없다. 그런데 신정아처럼 머리 좋은 사람일수록 내가 사기를 당하면 분하고 치가 떨리는 것 같이 남들도 나에게 속으면 비참하고 노엽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기가 힘든 것 같은 것은 왜일까?
- 고려대 교수, 영문학
-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성숙의 불씨>> 19호, 2007.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