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나면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도 사실상 마감된다. 그리고 보면 남은 기간은 겨우 반년, 이제 정말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4년 수개월의 세월은 대통령이 사회의 여러 분야와 수시로 대립각을 세워 불협화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국민들은 답답하고 고달팠지만 대통령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임기를 마쳐서야 되겠는가. 새삼스레 대량 득점을 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추가 실점만이라도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우선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대통령이 말을 아끼는 것이다. 지난날 대통령은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에 대해 증오나 비아냥이 섞인 말, 공격적이고 가시 돋친 말을 서슴지 않아 그들을 서럽고 아프게 했다.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품위 없는 막말을 마구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언론이나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아 스스로도 큰 상처를 입었고 지지율은 떨어졌다. 참으로 백해무익한 일이 아닌가. 그가 유달리 즐겨 하는 ‘공개토론’은 널리 의견을 듣고 뜻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강행하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었다. 남은 기간에는 이런 자세를 풀고, 나라의 어른답게 진지하면서도 품위 있는 말, 국민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축복이 담긴 말을 하면 좋겠다.
다음으로, 지난 일을 차분히 점검하고 마무리하는 데 전념해주기 바란다. 신규로 대형사업을 벌이거나 장기정책을 세우거나 기존 정책을 뒤흔들거나 할 시기가 아니다. 그런 것은 후임자의 몫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대통령은 다음 정권이 자신의 방침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대못질’을 해놓겠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이 과연 희망과 같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은 다가오는 대선 과정에 깊이 발을 들여놓지 말기를 권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 대통령이 직접 선거에 뛰어들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며 편드는 것은 곧바로 선거의 공정성을 위협한다. 선진국처럼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허용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민주역량이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최근에 대통령이 ‘자연인 자격’으로 제기했다는 헌법소원만 해도 그렇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로부터 몇 차례나 위법행위라는 판정을 받고서도 이를 깔아뭉개듯 반복하는 것이 과연 법치국가의 대통령이 할 일인가. 공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공권력에 의해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재판을 거는 것이 상식과 순리에 맞는 일인가. 이야말로 법을 좀 아는 식자(識者)의 우환(憂患)이 아닐는지.
마지막으로 임기말의 대통령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혹, 즉 퇴임 후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이 좋겠다. 권력이 다해갈 때의 허탈함과 두려움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더 탐할 것인가. 지난날 전임자들은 임기 후 자신을 지켜줄 안전판 마련에 부심했지만 모두가 헛된 꿈으로 돌아갔다. 권력의 세계에서 누가 누구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은 새로운 것을 얻고자 애태울 때가 아니라 가진 것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떠날 때의 미련이나 회한, 분노를 삭일 수 있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그는 퇴임 즉시 고향 플레인즈로 낙향해 유유자적 행복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퇴임 후에 미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 역사에 또 한 사람의 존경받지 못하는 전직 대통령이 추가되어야 쓰겠는가. 더 이상 자신을 아집이나 이념의 창틀에 가두지 말고 국민을 향해 가슴을 열어야 한다.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청와대를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권력의 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권력을 잡는 일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한국 휴머니스트회 회장
- <<중앙 SUNDAY>> 2007/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