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방으로 수사·재판 선진화 촉진될 것”
17일 오후 법무법인(로펌) 세종의 김경한 대표변호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공교롭게도 사회부장이 휴대전화로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피의자가 재미동포’라고 전해왔다. 법률시장 개방 이후 전개될 미국 대형로펌의 무차별 공세에 대한 대응방안이 이날 인터뷰의 화두였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번 사건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로 시작됐다. 먼나라 이야기로만 듣던 총기난사 사건의 피의자가 한국인이고 그 사건이 곧바로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현실이 이제 세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생활임을 재삼 확인시켜주는 순간이었다.
―이번 사건이 한·미 FTA나 비자면제협정 등을 포함한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습니다. 검찰에 30년간 재직하시면서 14년가량 법무부에 계셨고 법무차관까지 역임하셨는데 이런 사건이 생기면 법무부에서는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됩니까.
“너무나 충격적이고 슬픈 일입니다. 우선 범인의 국적과 생사여부가 확인돼야만 법적조치문제가 거론되겠지만 우리나라로서는 법적인 문제보다 양국간의 외교문제, 국민간의 정서문제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한·미FTA 체결로 법률시장이 개방되면서 온실 속 화초로 표현되는 국내 로펌들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로펌이 온실 속 화초처럼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법률시장개방이 오래 전부터 예상돼온데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우리 로펌들은 기업인수·합병이나 국제투자 등 외국 관련 업무에 많은 경험을 쌓아 이미 몇몇 분야에서는 뉴욕의 유명 로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시장개방은 협정발효 후 5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기간 중 기초체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습니다. ”
―일시개방으로 법률시장을 영미계 대형 로펌에 내준 독일과 순차적 개방으로 수성에 성공한 일본이 좋은 참고사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시장상황이 서로 다른 만큼 두 국가의 성공과 실패 양쪽 모두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선 기초체력 확보를 위해 대형화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일본도 1위에서 5위까지 대형로펌은 모두 시장개방의 파고를 이겨냈습니다. 세종의 경우 현재 164명의 국내외 변호사를 포함, 190명의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는데 유능한 재조 출신과 국제분야에 전문능력을 가진 국내외 변호사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다른 로펌과의 제휴나 합병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전문화도 필수적입니다. 오늘날 병원들이 내과나 외과를 다시 세부전문분야로 나누듯 로펌도 전문분야를 더욱 세분화해야 합니다. 대형화도 결국은 세부 전문화를 실현하기 위한 맨파워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 세종을 포함한 국내 일부 로펌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 로펌의 동남아 시장 진출은 이미 상당 정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한국 로펌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 로펌의 각축장이 되고 있습니다. 세종도 베이징(北京)에 지사를 설립한 지 2년쯤 됐고 상하이(上海)와 베트남에도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본 진출을 위한 담당자도 두었고 미국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미FTA로 우리만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시장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시장도 크고 우리나라 관련 업무는 우리 로펌이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내에는 한국계 변호사만 1만~2만명이 되는 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률시장 개방은 궁극적으로 검찰의 수사관행이나 법원의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수사, 재판 등 법률문화 전반에 걸쳐 선진화가 촉진되리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변호사가 입회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시행은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개방되면 미국처럼 모든 수사과정에 변호인 입회가 필수적인 것으로 바뀌는 등 수사과정에서의 인권문제가 더욱 예민한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전관예우 관행의 경우 이미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정도로 축소됐다고 보지만 어쨌든 시장개방으로 그같은 후진적 관행은 더욱 개선되리라고 봅니다.”
―변호사업계의 합리적 수임료 징수 등 법률서비스 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률시장 개방은 주로 로펌 영역을 대상으로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개인변호사가 로펌소속 변호사보다 2배 이상 많은 만큼 그들도 개방의 영향권 밖에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개인변호사들은 무엇보다 전문화가 필요하고 로펌과의 역할분담도 검토돼야 합니다. 수임료는 개방으로 경쟁이 격화되면 하향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그 반대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수임료보다 서비스의 질에 관심을 갖는 고객도 적지 않고 미국 유명로펌 수임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투자자 - 국가소송제(ISD)와 관련, 우리 경제정책이나 법률, 조세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습니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협정 의무위반 등으로 피해를 당한 경우 직접 해당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분쟁해결 절차입니다. 이는 국가간의 조약으로 사법권의 일부를 제3자에게 맡기는 것이며 협정체결 당사국의 합의에 의하고 또 상호주의가 적용되므로 주권침해 문제는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체결한 FTA나 세계 80여개국과의 투자협정 체결시 이 제도를 도입한 만큼 한·미 FTA에서만 이를 문제삼는 것은 합리성이 없습니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정부가 미국계 로펌 변호사에게 자문했는데 우리나라 로펌의 실력이 모자라서 입니까.
“그 문제와 관련, 국내 일부 로펌에서 국내 변호사들과 공동으로 자문단을 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섭섭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FTA협상과 같은 경우 경험이 제일 중요한데 그와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미국 로펌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
―지난해 법원과 검찰이 영장기각률이나 공판중심주의 추진으로 갈등을 빚었고 양측의 시각차는 현재에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기관간에 입장 차이에 따라 의견대립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이해와 설득으로 접합점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공판중심주의는 우리의 지향목표지만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실현해야 실패의 위험성이 줄어든다고 봅니다. 불구속 수사 역시 원칙이긴 하지만 기준이 들쑥날쑥하지 않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영장발부 및 기각과 관련, 항고제를 도입해 상급심의 심사를 받게 하면 최고심의 판단이 축적돼 객관적 기준이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검찰의 수사환경 급변 등으로 현직 검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사건의 객관적인 실체규명뿐만 아니라 사건 뒤에 스며 있는 인생문제를 좀더 깊이 성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범죄의 규명보다 중요한 상위가치임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원칙과 정도를 중시하고 공사생활에서 말을 아끼며 금전적 유혹을 뿌리치고 다소 고독하게 사는 판관의 자세를 지녀주었으면 합니다.”
―고향인 안동지역이나 동창회 등에서는 김 변호사님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던데 혹시 정치를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가 차장인가 지청장 시절 여권에서 서울지역 보궐선거 출마를 강력히 권유한 적이 있었는데 ‘제발 살려주십시오. 밥벌이라도 계속하게’라고 고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주어진 일 하고 후배들에게 소주 한잔씩 사주면서 조용히 살려고 합니다.”
인터뷰= 박민 사회부차장 minp@munhwa.com
-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한국 휴머니스트회 회장
- <<문화일보>> 200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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