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관심
연초부터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세안의 10+3 회합에 대한 기사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심지어는 EU가 걸었던 길을 지금 동아시아가 걷고 있다는 예측 기사가 나돌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의 움직임이 세계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원의 부국들이다. 석유에서부터 목재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온갖 종류의 자원들은 전세계의 수요를 충족시켜왔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가 가담하면서 이 기구는 인구면에서도 지역협력체제의 세계 선두주자로 올라서게 되었다.
아세안에 속하는 나라들은 내부 사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국가에 따라 현실적인 차이와 이질적인 성격도 크기 때문에 극도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아세안이 공동체로 발전하는 데 더 이상 장애 요인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아세안은 지금 앞만 보고 달려가려는 열정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유색인 협의체”
아세안은 1967년 8월 8일 방콕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5개 국가가 참여했으며, “평화와 자유와 번영을 확보하기 위해--서로의 협력과 우의를 다짐”했다. 이들 국가들은 중국의 무력적 위협이 가중되고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패권체제가 강행되던 시기에 평화와 자유와 번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었다.
그것은 이들 국가들이 이데올로기보다는 경제적 번영을 갈구했기 때문인데, 그런 생각은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크기와 다양한 성격을 포괄하는 국제 협력체를 만들게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전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라오스로부터 군부의 억압이 강제되는 미얀마까지, 그리고 부유한 오스트랠리아와 일본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아세안의 주창자는 말레이시아의 수상이었던 마하티르 모하메드(Mahathir Mohammad)였다. 그는 1990년대에 “코카시안(Caucasians)이 없는 코크스(caucus)”, 다른 말로 하면 “백인 없는 유색인의 협의체”를 이룩하고자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뒤 그의 꿈은 “아세안+3”, 즉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에다 한국, 중국, 일본까지 참여함으로써 명실 공히 아시아의 공동체로 발돋음 하게 되었다.
아세안의 현실
1976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제1회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우호와 협력에 관한 조약, 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TAC]을 체결했다. TAC는 주요 내용으로 회원국의 국내 문제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선언했으며, 중국, 인도, 일본, 러시아, 한국 등의 서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또 1994년에 창설된 아세안지역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에서는 국제 갈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전쟁 예방에 주력하기로 했다. ARF에는 미국, 러시아, 인도, 중국, 일본, 북한도 회원국으로 참여했는데, 1년 뒤에는 동남아시아의 비핵지대를 위한 조약도 체결했다.
장기적으로 아세안이 꿈꾸는 것은 EU와 같은 단일 시장체제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관세 장벽도 없앨 수 있을 것이고, 교역의 자유화 및 노동과 자본의 자유 이동도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다. 한편, 지난 2005년 후반기에 개최되었던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n Summit, EAS)에는 아세안과 중국, 일본, 한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도 참여했는데, 이는 결국 EAS가 EU나 미국에 경쟁적인 경제 블럭이라는 의미를 표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침투
EAS에 오스트랠리아와 뉴질랜드, 인도가 가입했다는 것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몇몇 국가들의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중국은 아세안에 대해 “끝없이 우호적인 접근”을 시도하면서 경제 협력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지역을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 안에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의도가 완연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지역의 경제권은 거의 화교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또 이 지역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의 반미 성향도 중국의 침투에 유리한 고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 아세안에서는 중국, 일본, 미국 세 나라의 영향력 침투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아세안은 “아직까지 EU 회원국과 같은 상호 신뢰라든가 협력 체제를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동체로의 확고한 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라는 견해마저 나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의 침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과 미국은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아세안은 또 다른 세력 경쟁의 터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srips.org에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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