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남·북한 동반 고립으로 가는가
김영희   |  2006-06-23 02:40:44  |  조회 2140 인쇄하기
북한의 대포동2호 미사일 소동은 1999년의 재판이다. 북한은 그때 써먹어 재미를 좀 본 수법을 다시 쓰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1999년과 2006년의 차이에 눈이 어둡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금의 미국 대통령이 빌 클린턴이 아니라 조지 W 부시라는 것과 2001년 9.11 테러 이후 불량국가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최소한의 관용이 사라졌다는 사실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북한은 98년 8월 중거리 미사일을 일본열도 넘어 태평양으로 발사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포동1호, 북한이 주장한 인공위성 광명성1호다.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북한은 99년부터 대포동2호 발사를 준비하는 동작으로 들어갔다. 하와이, 어쩌면 미국 본토의 서부지역에 미치는 사정거리를 가진 미사일이라고 추측됐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 나섰다. 북한은 미사일 포기에 대한 보상으로 10억 달러를 요구했다. 결국 북한은 미사일 개발에 모라토리엄(중단)을 선언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데 합의했다.

한.미.일 공조에는 99년과 2006년 사이에 충격적인 차이가 있다. 그때는 한.미.일 3국은 북한의 대포동2호 발사 저지에 보조를 같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순영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식량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경제제재 강화와 경수로사업 지원 중단 같은 강경조치를 경고했다.

지금은 어떤가. 미국과 일본은 북한이 새로운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북한에 경고를 하고 대응조치에 언급한다. 미국은 북한이 발사할 미사일을 요격할 태세를 갖추었다는 말까지 흘린다. 그러나 한국은 여유작작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쓰다 달다 말이 없고, 정부 당국자는 미사일보다 인공위성일 가능성이 있고 발사가 임박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이 사태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다는 의미의 말도 했다. 한.미.일 외교장관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자제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낸 99년과 대조적이다.

한.미, 한.일관계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 탄식이 나온다. 북한의 주장대로 그게 인공위성이라고 해도 발사체는 미사일이고 테스트 대상은 대포동2호로 짐작되는 중거리, 어쩌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탄두에 실린 것이 위성이냐 아니냐는 논란거리가 안 된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데일리 뉴스는 로스앤젤레스의 한인들은 미사일 소동 속에서도 북한의 김정일보다 월드컵 스위스 팀의 골잡이 알렉산더 프라이를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그가 혹시 한국을 북한으로 잘못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민족끼리의 동반고립이 걱정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 6자회담은 식물인간같이 되고 한반도의 긴장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 길은 하나뿐이다. 미국이 북한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평양 방문 초청을 수락하는 것이다. 북한이 한발 물러서서 타협의 손을 내민 기회에 가서 협상을 하라. 미국이 구상하는 미사일 요격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실패하면 미국의 망신이다. 미사일이 일본땅에 잘못 떨어지면 묵시록적인 재앙이 올 수 있다. 북한 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보복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북.미 대화가 문제 해결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리고 윈윈의 길이다.

부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아닌가.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고 창을 녹여 낫을 만든다는 구약성서의 말씀(이사야 2장4절)을 북한에서 실현할 큰 이상을 세우고 첫걸음으로 미사일 협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게 그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길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크게 발상을 바꿔야 한다. 미사일을 녹여 농기구를 만들어 굶주린 주민들을 먹여살리겠다는 상징적인 결의라도 보여야 한다.-중앙일보 6월23일자에서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402 베트남의 변화와 새 지도 체제의 등장  진덕규 06-07-03 2476
401 언론자유, 법률로 규제 못한다  유재천 06-06-30 2174
400 억만장자들의 상반된 처지  김병주 06-06-30 2485
399 마음의 습관  임희섭 06-06-28 2732
398 고대신문 인터뷰-'문학은 인간 내면 보여준 요술지팡이'  서지문 06-08-16 2479
397 국제 문제에 대한 여론 조사  진덕규 06-06-30 2110
396 남·북한 동반 고립으로 가는가  2  김영희 06-06-23 2140
395 멕시코 대선의 거센 포퓰리즘  진덕규 06-06-19 2198
394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김형선 06-06-14 2191
393 역사 드라마의 史實과 픽션의 한계  신봉승 06-06-13 2347
4142434445464748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