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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을 새 것처럼 1
신봉승   |  2006-07-24 09:41:49  |  조회 2338 인쇄하기
오늘 일이 궁금하면 옛 글을 읽어야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일이란 참으로 신통한 것이어서 옛 일과 상통하는 오늘의 일들이 너무도 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얘기를 사람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등의 문학작품은 특정지역의 풍속과 주인공이 속한 가문의 법도와 삶을 세세하게 기술하고 있고, 혜경궁 홍씨(1735~1815년)의 <한중록>은 당시대 외척들의 삶을 소상히 그려서 남기고 있어 문학뿐만이 아니라 민속학의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CEO를 대상으로 한 강연장에서 역사책 읽기를 강조하곤 합니다.

-기업이 어려울 때 ‘경영학개론’을 읽는 것을 아무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기업이 어려워질수록 ‘역사책’을 읽어야 합니다. 역사책에는 선악善惡을 구별하는 표준이 적혀 있습니다. 그 표준은 윤리성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기업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역사책’을 살펴서 읽는 것이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살려내는 지름길입니다. 반듯이 성찰省察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풍속과 인정을 기술한 경우는 정사기록正史記錄이나 소설보다 개인의 수상집이 더 소상합니다. <대동야승大東野乘>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90여권의 총서叢書는 씌어질 당시에는 수상이나 수필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역사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상을 진솔하고 충실하게 반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성현의 <용제총화>가 전범이 될 것으로 압니다. 성현은 성종시대를 살았던 대표적인 지식인답게 당시대의 사람들의 삶과 풍속을 진솔하게 적어서 남겼습니다. 재미있고 소상하게 적으면서도 당시대의 의미를 후대에 전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글쓰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 옛날에는 시장에서 에누리하는 일이 없고, 물가도 갑작이 뛰어오르는 일은 없었는데 지금은 상인들의 간교함이 날로 심하여 물건은 반이나 잡것이 섞이고, 한 자짜리 생선은 한 말의 곡식과 서로 바꾸게 되고, 한 수레의 물건 값이 베布를 바리로 실어가게 되었다. 염색하는 집이 더욱 심하여 비싼 값을 견디기 어렵건만 호세豪勢한 사람들은 오히려 사치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일삼으면서 값을 다투지 아니하고 그 값을 올릴 뿐이다.

어떻습니까. 마치 오늘의 우리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얘기를 적는 것이 역사입니다. 역사를 꼭 정치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 성 안에 사는 인가가 점점 많아져서 전에 비하면 십 배나 되고 성 밖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잇달아 있다. 공사의 건물들은 또한 높고 크게 짓기 때문에 재목이 매우 귀하게 되어 깊은 산중에도 나무는 이미 다 베어 버렸다. 강을 따라 뗏목을 띄우는 자는 고통이 심하다.
비록 세상의 상태가 날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세상이 태평하니 예문禮文이 번거롭고 성대한 것에 힘쓰는 탓일 것이다.

5백년도 더된 기록이지만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잘 사는 사람들이 거들먹거리게 되고, 사치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서울과 그 주변도시의 인구가 나날이 늘어나는 것도 지금과 다름이 없습니다.

옛 날에도 통행금지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거처하는 궁궐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백성들의 생업이 지금과 같이 절박하지 않았기에 그만한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러합니다.

- 예전에는 성문과 궁문을 모두 파루罷漏를 치면 열고, 인정人定을 치면 닫았다. 승지 등은 사경四更에 궁문에 가서 궁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려 들어가고,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남이南怡의 난에 예종의 명령으로 궁문은 평명平明에 열고 어두울 무렵에 닫게 하니 사람들이 편안하게 여겼다.

성현이 자신의 수상집인 <용제총화> 제1권에 적은 위와 같은 내용들은 물론 편의상 뽑은 것이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은 대단히 중요하여 그가 적지를 않았다면 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대에는 수상隨想의 형식으로 기술하였다고 하더라도 진솔한 내용을 담으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기술로 승화되는 예라고 하겠습니다.shinb33.pe.kr에서
<극작가,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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