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칠레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여자 대통령이 취임했다.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는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45.95%를 얻어 25.4%를 얻은 세바스찬 피네라(Sebastian Pinera)를 제쳤지만 과반수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2006년 1월 15일의 2차 선거에서 53. 5%를 확보함으로써 칠레의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세번째로 직선 여자 대통령이 되었다.
이 날 취임식장에는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베네주엘라 대통령 유고 차베스,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등 근 20여 명의 국가 수반들이 참석했다. 바첼레트는 전임 대통령 리카도 라고스(Ricardo Lagos)의 축하를 받으면서 그와 따뜻한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라고스는 국민들에게 신임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으며, 그 녀가 “자유로우면서도 다양성을 지닌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아낌없이 성원해 줄 것을 역설했다.
피노체트 시절의 악몽
칠레는 지난날 피노체트(A. Pinochet)의 악명 높은 “추악한 통치”를 경험했다. 칠레에는 미국 CIA와 칠레의 부르조아 그리고 군부가 연대하여 사회주의자인 아옌데(Salvador Allende) 대통령을 실각시켰던 과거와 17년 동안이나 통치권을 행사했던 피노체트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피노체트가 1973년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을 때는 이미 3만 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그의 집권기에도 3,000여 명이 살해당했으며, 실종자만도 1,000명을 넘었다. 또 고문으로 불구자가 된 사람이 10만 명 이상이고, 국외 추방자는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잔인한 독재자 중 하나였다. 단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현직 대통령을 살해했던 피노체트 통치 하에서도 칠레에서는 여전히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었다. 인구가 1,600만 명이고, GNI가 $4,900인 칠레는 스페인계 혼혈과 원주민이 섞여 사는 다인종 사회이지만 범죄나 부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눈감아 주는 묘한 사회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도 시간을 끌고 있으며, “추악한 통치”에 대한 전말도 아직까지 밝혀 내지 못하고 있다.
중도 좌파 대통령의 실험
바첼레트는 공군 장성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가령 아버지가 워싱턴의 칠레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그 녀도 미국 메릴랜드에서 중학교를 다녀야 했다. 다시 귀국한 그 녀는 1970년에 전국 최고 성적으로 칠레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 녀의 아버지는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항명하다 고문으로 사망했으며, 그 녀 역시 심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1975년 그 녀의 가족이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자 그 녀는 동독의 홈볼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면서 이 곳에서 칠레에서 망명해 온 건축가와 결혼했다.
피노체트가 몰락한 후 귀국한 바첼레트는 의과대학을 마치고 의사로 일했으나 1990년 민주화 이후에는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6년에는 칠레 [정치전략문제연구소]에서 “대륙방어전략”을 수강했으며, 워싱턴의 [방어전략학교]에 유학을 가기도 했다. 2000년에는 라고스 대통령 정부에서 보건장관으로 일했으며, 2002년에는 최초로 여성 국방장관이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그 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정치적 모험
신임 바첼레트 대통령은 중도 좌파로 사회당 소속이며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를 주장한다. 그 녀는 시장자유주의를 내걸고 극심한 빈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복지 정책을 공약했다. 시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그 녀의 기본 정책이지만 이 정책은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 같다. 극좌 모험주의자들의 테러 활동이 이어지고, 극우파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갈등의 사회에서 이 두 가지 정책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희망 사항”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그 녀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사회주의자이다. 그러나 붉은 모자 하나만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여러 개의 모자를 쓰려고 한다. 나는 지난날에도 사회주의 장관으로만 일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모든 칠레 사람들의 대통령으로 일하겠다는 것을 약속한다.”라고.
그러나 지금 그 녀 앞에는 피노체트 가택 연금 문제를 비롯하여 가난한 농민들의 시위 문제 및 부유한 자본가들의 압력 등 수많은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그런가하면 오랜 관행이 되어 버린 부정과 부패도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인근 국가들의 급진적인 반미 지향도 그 녀에게는 또다른 어려움이 되고 있다. 아무리 국민들의 높은 지지가 뒤따른다 해도 현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결국 무능한 지도자로 끝나게 된다는 사실이 그 녀에게 어느 정도로 적용될 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srips.org에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