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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는 부시의 핵 정책
진덕규   |  2005-11-09 04:47:41  |  조회 2156 인쇄하기
최고의 국빈 대우

두 주일 전에 인도 수상 만모한 싱(Manmohan Sing)은 최고의 국빈 예우를 받으면서 백악관을 방문했다. 부시는 그를 특별히 환대했으며, 싱 수상과 동행했던 인도의 기업인들에게도 더할 수 없이 다정하게 대했다. 마치 인도가 미국의 오랜 맹방이라도 된 것처럼.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와 미국은 그저 그렇고 그런 사이에 지나지 않았었다.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서에서 미국과 인도는 서로 손잡고 국제적인 테러에 공동 대응할 것을 다짐했으며, 양국의 통상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전폭적으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부시가 인도를 핵확산 금지 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NPT)에서 규정한 핵무기 보유 국가로 사실상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도가 공식적으로 NPT의 핵보유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시간 문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무력화되고 있는 NPT

핵무기야말로 20세기 과학 문명이 가져다 준 최대의 재앙이다. NPT는 이를 막기 위한 수 많은 시도 중의 하나로서 1968년에 핵무기를 실험했던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및 미국에 의해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은 핵무기의 확산을 막고 종국적으로는 핵보유 국가의 핵무기를 완전히 철폐시키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를 위해 핵무기 보유 국가와 그 밖의 국가들은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합의했었다. 또한 비핵국가들에게는 핵무기를 갖지 않는 대신 핵의 평화적 개발에 상응하는 경제적 지원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인도는 1998년 5월에 지하 핵실험을 감행했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파키스탄도 그 뒤를 따랐다. 지금은 이스라엘도 핵무기나 핵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이 핵실험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북한마저 최소한 몇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갖는다면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의 핵개발은 시간 문제이고, 북한의 핵무장은 일본과 타이완으로 그 영향이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NPT는 사실상 무력화할 게 뻔하다.

인도의 경우

그러나 핵무기를 보유한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는 차이가 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와 그 제조 기법을 국제 사회에서 불법적으로 거래해온 “불신 국가”라는 오명을 달고 있다. 북한이나 리비아, 심지어는 이란과 이라크와도 거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쯤 되면 파키스탄은 사실상 “불량국가” 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파키스탄과는 달리 인도는 핵무기를 보유했으면서도 그것을 관리하는 데 철저했다. 핵무기 제조에 대한 기법이나 재료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으려고 애써 왔다. 한편, 인도는 오래 전부터 NPT가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는데, 그 이유는 NPT가 중국의 핵 보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인도의 이러한 주장과 태도는 비단 부시 뿐만 아니라 클린턴에 의해서도 상당 부분 받아들여져서 인도의 핵무기 관리는 “신뢰해도 좋을 만큼 믿음이 간다.”고 말해질 정도였다.

부시의 잘못이 몰고 올 파장

이번에 부시가 보여준 인도에 대한 태도는 부시가 가지고 있는 그의 기본적 관념을 표현한 셈이다. 그는 매사를 “선과 악의 이분적 사고”로 바라보기 때문에 비록 핵무기를 가졌어도 선한 국가는 NPT에도 가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보유도 인정해야 하지만 악한 국가는 아무리 핵무기를 가졌다 해도 그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핵 개발이 가능한 국가들, 즉 브라질, 일본, 남아프리카, 타이완, 심지어는 우리 한국까지도 먼저 핵을 개발한 뒤에 관리를 잘 하고 그것을 외부에 누출시키지 않는다면 NPT에 가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준다.

결국 NPT는 무정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강대국들의 독점물임을 실증해 줄 뿐이다. 부시가 인도를 중국에 대한 견제구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했던 것인지, 아니면 “선과 악의 이분적 사고”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부시의 핵 정책은 정도에서 벗어났다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인류의 재앙이 되어 버린 핵무기 폐기는 점점 더 요원해지고, 불량 국가가 핵을 갖게 되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제압할 수 없는 최대의 반문명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인도의 싱 수상에게 보여준 부시의 핵무기 인정 발언은 핵 정책에 대한 그의 잘못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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