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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주에 도전장 낸 중·러동맹
김영희   |  2005-10-14 10:19:51  |  조회 1831 인쇄하기
러시아가 포함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들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회의를 열고 미국에 중앙아시아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고 세상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91년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레오니드 크라브추크, 벨로루스의 스타니슬라프 슈스케비치 대통령을 브레스트의 한 별장으로 불러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하고 루스(러시아)족 국가들만의 독립국가연합(CIS)을 출범시킬 때는 중앙아시아 이슬람국가들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다. 14년 사이에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때 옐친에 대한 배신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중앙아시아 5개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정상들은 부랴부랴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에 모여 그 황당한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의논이 분분한 가운데 중앙아시아 공동체 구상도 나왔다. 그러나 석유가 나는 카자흐스탄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자원빈국인 나라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봐야 빈곤의 공동체밖에 될 수 없다는 현실 앞에 그들은 기가 죽었다. 결국 그들은 루스족들의 배타적인 클럽 같은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는 자격을 보장받는 것으로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중앙아시아의 위상을 1991년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높여 놓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미군기지를 확보했다. 겉으로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의 잠정적인 조치라고 했지만 미국의 속셈은 전략적 가치가 높은 중앙아시아 진출이었다.

중앙아시아는 중국의 뒷마당이요 러시아의 앞마당이다. 그 당시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군사기지를 갖는 것을 러시아가 견제하지 못한 것은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미국의 호전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푸틴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고 미군의 중앙아시아 주둔을 묵인하는 대신 체첸반군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고 체첸사태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지금은 러시아의 생각이 달라졌다.

우즈베키스탄도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원조를 받고 폭정을 묵인받았다. 그러나 이웃 키르기스스탄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대통령이 사임하는 사태를 보고 미국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루지야의 장미혁명과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뿐 아니라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까지, 배후에 민주주의 확산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미국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이 주는 약간의 원조와 정권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이 중앙아시아 진출로 얻는 이득은 크다. 러시아의 중동. 걸프지역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2020년 정도를 시야에 두고 중국을 배후에서 압박하고, 카스피해의 석유를 둘러싼 유라시아의 파워게임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미국이 6월 말 인도와 군사협력협정을 맺은 것도 장기적인 중국포위 전략의 중요한 수순이다.

푸틴과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가 모스크바에서 만나 "21세기 국제질서에 관한 공동성명"을 내고 국제정치에서의 미국의 독주와 전횡을 견제하고 나선 것은 예상된 반응이다. 푸틴과 후진타오는 5월부터 7월 사이에 무려 다섯 번이나 만난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라는 강적 앞에서 과거의 전략적 파트너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바야흐로 미국과 인도를 한편으로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전략적인 경쟁 내지는 대결구도가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의 동반부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런 사태는 필연적으로 한반도에도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그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도 관계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랴오둥(遼東)반도 앞바다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한다면 한국의 21세기 전략구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제 동북아의 개념을 훨씬 넓게 잡아야 한다.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의 동쪽 절반이 우리 미래의 전략구상뿐 아니라 주변 생활공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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