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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선택: 슈뢰더와 메르켈의 싸움
진덕규   |  2005-10-14 13:45:04  |  조회 2076 인쇄하기
충격적인 선거 결과

노르트-베스트팔렌(North Rhine-Westphalia)은 독일의 16개 주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유권자 중 산업 노동자의 비율도 높은 곳이다. 39년 동안 좌파인 사민당(SPD)이 집권했었지만 지난 5월 22일에 치뤄진 이곳 지방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이 44.8%로 승리하면서 일순간에 분위기가 돌변한 것이다. 집권당인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eder) 수상은 총선을 앞당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의 정치 일정에 따르면 오는 7월 1일에는 의회에서 신임투표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슈뢰더가 패하면 의회는 해산되고 9월 중순에는 총선거를 치뤄야 한다.

슈뢰더 수상은 이번 패배에 조기 총선으로 맞서려 한다. 그를 포함하여 사민당 지도부는 “지방 선거는 집권당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고, 총선거는 국정 담당자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권자들도 신중해진다.… 이 점이 바로 우리 사민당이 이길 수 있는 이유이다.”라고 말한다. 기독교민주연합은 “높은 실업률, 높은 물가, 높은 사회 불안의 '역3고(逆3高) 현상'에서 사민당을 지지해 줄 유권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반박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정책

지난봄부터 독일 동부 지역은 월요일마다 열리는 노동자들의 시위로 가득 찬다. “슈뢰더는 사회 정의의 배신자다!”라는 구호에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 독일의 실업률은 12.6%에 이른다. 520만 명의 실업자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 이 숫자는 1930년대 이후 최대이다. 그런데도 슈뢰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도한 복지 정책과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 및 관료의 권위주의가 생산성을 저하시켜 독일의 오늘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 대응책은 “신자유주의적 개혁” 밖에 없으며, 자율과 경쟁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치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개혁 정책은 아직까지 별 효과가 없다. 오히려 그에게는 “자본가의 앞잡이!”라거나 “폭스바겐 자동차의 하수인!” 게다가 “방송 미디어의 선동꾼!”이라는 비난까지 덧붙여졌을 뿐이다.

슈뢰더와 메르켈

슈뢰더의 정치 역정은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지난날은 앞으로의 나날들처럼 순탄치 못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루마니아에서 전사했고, 혼자된 어머니는 가계를 꾸려야 하는 빈곤의 일상을 겪어야 했다. 그는 동네 아이들조차도 같이 놀기를 거부했던 “남루한 어린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철공소와 건축장에서 일했으며, 야간 학교를 거쳐 1970년대에야 겨우 법률가가 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맑시스트였고 환경론자였다. 그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다. 하나는 독일 통일을 이룩한 사민당의 빌리 블란트(Willy Brandt)와 같은 대정치가가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소부인 어머니에게 최고급 자가용 메르세데스(Mercedes)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후자는 이루었지만 전자는 아직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
한편, 슈뢰더에게 도전장을 던진 기독교민주연합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의 삶도 어느 면에서는 슈뢰더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녀는 올해 51세로 함부르크에서 개신교 목사의 딸로 태어나 동독의 공산당 치하에서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재원이었다. 78-90년까지 동독의 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나 89년부터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90년에는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당시 헬무트 콜 수상의 지원으로 각료로 임명되기도 했다. 2000년에는 기독교민주연합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그녀는 “독일의 대처(Thatcher)"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리더십과 “보수주의의 최전선에 선 전형적인 투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선택

독일은 지금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슈뢰더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메르켈의 “신보수주의적 발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슈뢰더의 개혁은 ‘어젠다 2010’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복지 예산을 축소하고 정년 퇴직자의 연령을 상향 조정하며, 감세 정책 실시와 장기 실업자 감축 방안 등을 내걸었다. 반면에 중도적 보수주의인 메르켈은 과세 제도의 전면 개혁과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 미국과의 긴밀한 연대, 낙태와 동성애자의 결혼에 대한 유연한 접근 등으로 되어 있다. 그녀는 “독일을 더 이상 무능한 선동꾼의 나라로 전락시킬 수는 없다!”면서 사민당의 집권이 “놀고먹는 사회 풍토”를 가져왔다고 비난한다.

8200만의 인구와 GNI $25,000의 강대국이 지금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 몸짓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것일 수도 있으며, 진보 좌파가 던져 놓은 “성장의 한계”와 보수 우파가 보여주는 “배분의 문제” 중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인가를 판가름하는 승부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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