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무너졌다는 말들을 자주합니다. 정말 잘 못된 말입니다. 교육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졌다고 해야 옳은 말입니다. 여기서 거론 하는 무너진 선생님은 초중고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의 교수까지도 포함됩니다.
어느 여자 중학교의 학생이 담임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아서 흔들었다는 뉴스가 나가자 여러 언론들은 그 여학생을 버릇없다고 나무랐습니다만, 정작 나무람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 선생님이 분명합니다. 오죽 못났으면 가르치는 학생에게 머리채를 잡히면서까지 교단에 서 있어야 합니까.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고서라도 학생들에게 위엄을 갖추어야 합니다. 옛날 서당의 훈장님은 각각 진도가 다른 제자들에게 과제를 주었고, 그 성과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도들은 훈장님을 아버님과 꼭 같이 공대했습니다.
경상남도 하동군에 가면 지리산 청학동에 자리 잡은 서당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게 됩니다. 서울에 사는 분들이 귀애하는 자제들을 방학 동안만이라도 청학동 서당에서 한자를 공부하게 하려고 하동군으로 몰려드는 풍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입니다. 청학동 서당에서 가르치는 것은 한문이지만, 그 배우는 과정에 담긴 예절과 절도는 공교육기관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엄격합니다.
새벽 여명이 밝으면 초등학교 5하년 어린이가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정돈하고 계곡으로 나갑니다. 새벽안개 사이로 물소리가 흐르고 그 시린 물에 세수를 합니다. 얼굴을 닦고 심호흡을 한번 하면 새벽 5시, 훈장님이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훈장님 앞에 무릎을 꿇은 어린이는 어제 배운 ‘4자 소학’을 큰 소리로 외와서 읽어야 합니다. 복습과 예습이 신통치 않아서 몇 번 막히면 훈장님은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고 어린이의 종아리를 때립니다. 아무도 소리 내 울거나 방밖으로 달아나지 않은 채 입술을 물고 훈장님의 매를 맞습니다. 오히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어머니들이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참 아름다운 관경이자, 우리들 본래의 모습이 분명합니다.
편달(鞭撻)이라는 말만해도 그렇습니다. 앞에 쓴 ‘채찍 편(鞭)’자는 회초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편(敎鞭)을 잡는다는 뜻은 애초에 회초리를 들고 가르친다는 뜻이며, 다음 글자인 ‘매질할 달(撻)’자도 잘못을 저지른 자녀나 제자들에게 회초리를 들어서 볼기나 종아리를 때린다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입니다.
2만자가 넘는 한자 가운데서 하필이면 회초리로 매질하는 글자만을 골라서 훈도(訓導)의 의미로 쓰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를 가르치는 교실에서 선생님이 회초리를 드는 일을 ‘학교폭력’이라고 매도하는 언론과 부모들이 이 땅의 지식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이루어서 선진국으로 가자고 아우성입니다만, 돈이 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선진국은 지켜야 할 ‘룰’을 소중히 하며, 자기만 못한 사람들을 다독여서 함께 갈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실로는 선진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최고학력의 지식인 어머니들이 자식들이 듣는 앞에서 선생님의 험담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은 고사하고, 심하면 학교로 몰려가서 자식을 훈도하는 선생님에게 빗자루를 휘든 꼴불견을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 우리만의 한심한 작태입니다.
그런 무지하고 천박한 어머니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자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당연히 파출소로 달려가 담임선생님을 잡아가 달라고 고발을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겨우 여덟 살입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파출소로 달려가 선생님을 고발하는 일 또한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수치스러운 입니다.
회초리를 들어야지요. 이런 때 ‘편달’이라는 말이 씌어져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말입니까? 아닙니다. 아이들을 잘 못 가르치는 어머니의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자식을 가르치는 참 교육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독자들이여, 내버려두면 큰일 납니다. 그 집안이 큰일이 아니라 이 나라가 큰일이라는 뜻입니다. 가정이 천박해지면 나라도 천박해 지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