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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계획死計
신봉승   |  2005-10-14 13:21:22  |  조회 1798 인쇄하기
계획이라는 말은 비교적 쉽게 쓰이는 말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다양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 일단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이 사람의 상정입니다. 그러나 세운 계획대로 성사되는 일을 그리 흔치가 않습니다. 설혹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달려들 수가 없기에 계획은 세우게 마련입니다. 또 계획이라는 말은 꼭 사업이나 장사에만 국한되어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도 계획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宋 나라 때의 학자 朱新中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다섯 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五計論을 펼친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계획인 生計가 있어야 하고, 병마나 부정으로부터 몸을 보전하는 계획인 身計가 있어야 하며, 집안을 편안하게 꾸려가는 계획인 家計가 있어야 하며, 멋지고 보람 있게 늙어야 하는 계획인 老計도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계획인 死計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빈틈없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이 소중한 가르침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성공한 삶은 고사하고 스스로 실패와 고통을 자초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대답은 하나 일 수밖에 없습니다.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요행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의 많은 고전을 읽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요행수에 맡겨서 성공했다는 기록은 눈 닦고 찾아도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의술이나 의약품이 발전한다 해도 사람은 반드시 죽음 앞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이 드신 어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잠을 자듯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중병에 시달리면서 가산을 탕진하게 되고, 산소 호흡기를 단 채 오랜 시일을 병원 응급실에서 보내게 된다면 가족에게는 말 할 것도 없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폐를 끼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죽음을 맞기 위한 死計를 계획하게 됩니다. 살아서 행하는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는 일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죽음을 맞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는 말은 조금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을 계획하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다섯 가지 인연과 작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五滅입니다.

오멸의 첫 번째는 재물과 헤어지는 일입니다. 살아서 마련한 재산에 미련을 두고서는 편하게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재물은 고사하고 단 한 개의 애장품도 가지고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일을 滅財라고 합니다. 오멸의 두 번째는 남과 맺은 원한을 없애는 일입니다. 살아서 겪었던 남과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씻어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세상살이가 꼭 편할 수는 없습니다. 남과의 다툼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다툼에서 비롯된 원한을 씻어내는 일을 滅怨이라고 합니다.
오멸의 세 번째는 남에게 진 빚을 갚는 일입니다. 빚이란 꼭 돈을 꾸어 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도 큰 빚이 아니겠습니다. 살아있을 때 신세진 일들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마음 편하게 이승을 하직하는 일이 됩니다. 남에서 받았던 도움을 깔끔하게 가시게 하는 일을 滅債라고 합니다. 오멸의 네 번째는 정든 사람, 정든 물건과의 작별을 연습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정들어도 함께 갈 수가 없고, 아무리 정든 물건이 있어도 가지고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든 이, 정든 물건과의 작별을 滅情이라고 합니다.
오멸의 마지막 다섯 번째는 종교적인 개념으로 승화됩니다. 죽는 것이 끝장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신념이 있다면 그 신념을 滅亡이라고 합니다.

독자들이여, 어떻습니까. 참 아름답질 않습니까. 아름다운 죽음에 임하기 위해서도 이같이 오멸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항차 살아있는 사람들이 흥청망청 요행수나 바라고 있대서야 말이 됩니까. 아무리 작은 일에도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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