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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만나자
서지문   |  2005-10-14 13:11:52  |  조회 1789 인쇄하기
지난주 24일부터 26일까지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제2회 서울 국제문학 포럼이 열렸다. 미국·유럽은 물론 아시아·중남미·러시아·동구(東歐)·중동·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초대받은 저명 문인들과 국내의 저명 작가·시인들이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을 가지면서 상호 이해와 우정의 기반을 구축하고 다졌다.

사실 문학의 세계적 거장들도 서로를 대면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아 서신을 보내어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이런 국제 문학 포럼이나 작가 대회에서 만나야 안면을 트는데, 너무 대규모 행사에서는 오히려 잠시라도 차분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외국의 문인 19명, 국내 문인·비평가 40~50명이 참여한 이번 대산문화재단 주최의 세계 문학 포럼은 아주 적절한 규모였다고 생각된다. 포럼을 통해서는 서로의 신념과 세계의 상황에 대한 지적인 성찰을 교환할 수 있었고 환영 리셉션, 문학의 밤, 환송 만찬 등의 행사를 통해 인간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문학의 밤’ 행사에서는 참가한 국내외 시인들의 자작 시 낭송이 있었고, 안숙선 명창의 ‘흥부가’ 한 대목도 들었고, 독일의 시인이며 작곡가·가수인 볼프 비어만씨의 서정적이면서도 힘찬 시 낭송과 이야기노래, 그리고 김민기 작사·작곡 ‘아침 이슬’의 독일어 가창이 있어서 우정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환송 만찬에서는 사회자가 그냥 이 사람 저 사람 나와서 한마디하라고 지목했는데, 모두 문인다운 순발력을 발휘해서 재치 있고 애교 있고 애정 어린 치하와 감흥을 피력했다.

그의 시 속에 유·불·선교의 감성이 녹아 있는 미국의 대표적 생태 시인 게리 스나이더는 5년 전 포럼에 왔을 때 김우창 교수와 긴 산책을 하며 동서양의 문학과 사상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을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역시 이번에 두 번째로 참가한 영국의 대표적 작가 마거릿 드래블은 5년 전에 작가 박완서 선생과, 이번에 시인 김승희씨와 여성 작가로서 유대를 맺게 된 것을 기뻐했다. 그리고 작가 황석영씨와 고은 시인에게 매료되어 고은 시인의 드라마틱한 시 낭송과 ‘아리랑’ 가창, 그리고 환송 만찬에서 한 황석영씨의 뼈 있는 농담에 대해 환호했다.

물론 문인들은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 가장 깊고 진정한 만남이다. 우리는 홀로 조용히 책을 읽음으로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이해하고 투시할 지혜와 직관력을 얻는다. 그러나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살아 숨쉬는 인간을 직접 만남으로서만 터득할 수 있는 인간적 진실이 있고, 채울 수 있는 영혼의 갈망이 있다. 일찍이 동서양의 만남과 이해, 화해를 추구했던 영국 작가 E M 포스터는 ‘only connect’- 어떻든 접촉해라, 라고 말했다.

드래블 여사는 5년 전 서울에 왔다가 ‘한중록’의 영역본을 접하게 되어 읽고 크나큰 감명과 충격을 받아 그 이야기를 혜경궁 홍씨의 넋이 사후 200년 동안 반추한 자신의 생애를 다시 기술하는 형식의 소설을 썼다. 그런 직접적인 효과가 아니더라도 이번에 내한했던 거장들이 한국에 와서 만난 사람들, 접한 문화와 정서는 그들의 작품 세계를 풍성하게 할 것이고 그들의 독자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을 느끼고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만남은 작가들에게만 유익하고 생산적인 것이 아니다. 군대라는 곳은 전국에서 모인,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억지로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 군대이지만 또한 군대에 오지 않았더라면 일생 동안 접할 수 없었을 사람을 접하고 인간적인 만남과 연결을 갖게 되는 곳이 군대이다. 그 만남을 귀한 것으로 만든다면 나의 생은 값진 것이 되지 않을까.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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