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민족사관, 올바른 근현대사 이해 해쳐”
“한국의 근대사 연구와 근대사 교육이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그 한계를 벗어나 세계사적 맥락에서 우리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교육을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원로 사학자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서양사·75)와 중견 사학자인 이훈상 동아대 교수(한국사·56)는 최근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가 ‘강제병합 100년, 쇄국적 역사관,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주제로 마련한 대담에서 국내 역사학계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담에서 국내 역사교과서 근대사 부문을 지목하며 일국사(一國史) 중심주의적 시각에 빠져 있는 현황을 지적했다. 그는 “1885년 4월 15일 거문도 사건을 우리 현행 교과서는 그 계기가 조-러수호조약에 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조-러 밀약설’이라고 해야 정확한 것”이라며 “밀약에 의해 러시아가 한국 땅에 해군기지를 설치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일본과 청나라는 톈진조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우리 교과서와 한국사학계는 러시아에 대한 이 같은 영·청·일의 대응을 마치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건처럼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현행 교과서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하게 된 원인이 ‘대다수 관료와 독립협회가 왕의 환궁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지만 환궁은 독립협회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1년 8개월 전의 일”이라며 “우리나라의 요구에 대한 러시아의 이른바 ‘5개항 회답요점’이 너무 회피적이고 모호해서 이에 대한 실망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밖에도 역사 서술에서 당시의 국제정세를 반영한 기술보다는 민족주의에 도취된 ‘허세’를 부리는 해석이 많다고 주장했다.
한국사 연구와 교육이 처음부터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이 교수는 “1970년대 전반만 하더라도 한국사 연구에서 국제관계가 지금처럼 경시되지는 않았다”며 “한국사 특히 근현대사의 경우 국제관계에 대한 관심은 거꾸로 저조해졌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에 대해 최 교수는 “건국 이후 정치가 역사교육을 지배한 데서 비롯된 부작용으로 ‘민족적 민주주의’와 ‘민족주체’에 몰입된 풍토가 한국 근대의 세계사적 이해를 저해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근현대사 부문에서 나타나는 서술 오류나 미비는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연구 교육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두 교수의 공통된 진단이다.
최 교수는 “한국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대학의 사학과를 동양사 서양사 국사학과로 갈라놓는 것부터가 시대착오적”이라며 “민족주의 교육, 즉 일국사적 교육은 우리 역사교육의 쇄국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민족주의적 풍토와 관련해 “올해 한일강제병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일본의 불법을 드러내는 이야기만 무성했지 이런 비극이 초래된 이유를 짚으며 역사의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대담은 16일 발간되는 굿소사이어티의 이슈 레터 ‘대화와 소통’ 3호에 실린다.